내일신문 2015-09-18 12:11:01 게재
빨간 셔츠를 입고 바닷가 모래톱에 한쪽 볼을 대고 드러누워 깊은 잠에 빠진 것만 같은 어린 아이의 사진 한장. 가족과 함께 시리아를 탈출, 터키 해변에서 그리스로 가려다 보트가 뒤집혀 익사한 세살박이 아일란 쿠르디의 숨져 있는 모습은 전 세계인들의 가슴을 두드렸고, 정치 지도자들을 구경꾼에서 행동가로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아일란의 아버지 압둘라는 아내와 두 아들을 이끌고 내전의 땅 시리아를 떠나서 이웃나라 터키 국경을 넘었다. 압둘라는 여러 차례 실패 끝에 터키의 밀항업자에게 4000유로(약 500만원)를 주고 요트를 태워 그리스로 가게 해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약속 당일 새벽 3시 어둠속에 나타난 배는 요트가 아니라 고무 보트였다. 해변을 출발한 보트는 곧 높은 파도에 뒤집혔고 네 명의 가족은 사투를 벌였으나 아내와 두 아들은 모두 익사하고 아버지 혼자 살아났다. "이 세상 모든 나라를 다준다 해도 난 원치 않아요. 소중한 것이 사라졌잖아요." 혼자 살아남은 압둘라가 시체안치소에서 가족의 시체를 확인하며 오열했다. 그러나 쿠르디 가족의 이야기는 수많은 난민의 비극 중 하나일 뿐이다.
중동 국가라면 우리는 이스라엘, 레바논, 팔레스타인, 요르단을 떠올린다. 시리아는 생소하게 들렸던 국가다. 아사드 부자 2대에 걸친 독재체제, 서방세계에 위기감을 몰고 온 이슬람국가(IS)의 본산, 내전에 의한 대량 난민 발생지가 되면서 시리아는 중동의 또 하나의 화약고로 떠올랐다.
시리아는 비교적 큰 나라다. 면적이 거의 남한 두배에 이르고 인구도 2010년까지만 해도 2200만명을 넘었다. 지금 시리아의 인구는 약 1800만명으로 추정된다. 400만명이 어디로 갔을까. 이들은 난민이 되어 터키 등 주변국가로 탈출했다.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1800만명도 자국 영토 내에 있지만 원래 살던 고향에서 배기지 못해 이주한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총체적으로 시리아는 난민국가가 된 셈이다.
시리아의 대량 난민은 IS보다 더 두려운 대상으로 주변국과 유럽대륙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은 IS보다 더 두려운 대상
시리아 난민의 최종 목적지는 유럽 대륙이다. 유럽 중에서도 잘사는 나라, 즉 독일 프랑스 영국 스칸디나비아 3국 등 북서유럽이다. 인간의 속성상 사람이 살고 싶은 곳은 자유와 질서가 있는 곳이다. 무질서의 땅 중동에서 질서의 땅 유럽으로 난민 행렬이 향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번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으로 세계여론이 들끓자 유럽 연합은 시리아 난민 16만 명을 수용하기로 하고 각국에 자율적인 할당을 요청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난민 수용의 선봉에 나서 영웅으로 갈채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유럽 대륙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인도주의의 가슴으로만 풀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유럽은 기존의 이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실업, 범죄, 종교충돌 등으로 인종 분규에 대한 공포감이 잠재해 있다. 난민의 유입은 인종과 종교 갈등을 악화시킬 것이 뻔하다. 눈을 중동으로 돌리면 400만명의 난민이 유럽 국가로 들어갈 틈을 노리고 있다. 시리아에 남은 난민 수백만명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내전과 기근이 심한 아프리카 국가의 난민이 지중해를 넘어 유럽대륙으로 밀려들고 있다.
수백만명의 시리아 난민을 유럽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공항이나 역에서 환영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주택을 주고 다른 가치관을 가진 난민들을 영원히 이웃으로 데리고 살아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헝가리 등 동구권 국가들이 국경을 폐쇄하는 등 난민 유입에 극도의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지리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인접한 유럽 대륙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난민 사태는 인류애와 국익이 심각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는 민감한 이슈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난민도 늘어
아시아 동쪽 끝 한국에서 보는 시리아 난민 사태는 추상적 개념으로 보인다. 한국도 65년 전 전쟁 난민의 고통을 겪은 나라이지만 지금 대부분 국민에게 난민 문제는 텔레비전 화면에서나 보는 먼 나라의 이야기다.
과연 먼 나라 이야기일까. 한국에 체류 중인 시리아인들은 700여명이 넘고 이들 중 50여명이 한국을 향해 시리아 난민을 받아달라는 피켓데모까지 했다.
2014년 유엔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난민 인구는 약 6000만명이다. 대부분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의 실패한 국가에서 탈출한 사람들이다. 또 겁나는 이야기는 기후변화로 환경 난민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북한과 인구대국을 이웃하고 있는 한국은 결코 난민 면제지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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