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5-10-01 13:50:27
폭스바겐(VW)이 사기를 쳤다. 좀 과한 표현 같기도 하지만 그 의도와 파장을 생각한다면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환경규제를 피하기 위해 무려 1,100만대의 디젤 자동차에 고의로 조작한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달았다가 들통 났다. 회사도 사상 최대 위기에 직면했고, 독일 경제의 신뢰도 역시 타격을 받았다. 더 나아가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에 변화의 불을 지르는 도화선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폭스바겐은 히틀러의 실용적이고 값싼 국민차 보급 구상에 의해 1937년 설립된 자동차 제조사다. 그래서 이름도 ‘국민차’(Volkswagen)이며 한때 딱정벌레(Beetle)라는 이름의 대표적 소형차를 대량 생산해왔다. 소형차 전통은 유지하고 있지만 폭스바겐은 중형승용차는 물론 포쉐와 람보르기니 등 스포츠카, 고급차 벤틀리, 그리고 1백만 달러나 나가는 스포츠카 부가티를 생산하는 종합 자동차 제조사로 진화했다. 작년 약 1,000만대의 자동차를 만들어 2,250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렸다. 토요타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동차메이커로 등극했으며 노동자 60만 명을 고용하는 독일 최대의 기업이다.
폭스바겐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추락시킨 원인(遠因)은 미국의 환경 기준이다. 배기가스 배출 규제 기관인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2009년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을 개정하여 건강위해물질인 질소산화물(NOX) 등 배기가스 규제를 강화했다. 디젤 엔진은 휘발유 엔진에 비해 질소산화물 등 미세먼지를 더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디젤엔진 차량 생산에 비중을 둔 폭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들은 미국 시장에서 불리하다.
미국시장 점유율 확대에 골몰하던 폭스바겐은 속임수를 썼다. 자동차는 배기가스배출을 저감시키는 소프트웨어를 부착해서 당국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운행할 수 있다. 폭스바겐은 실험센터에서는 이 소프트웨어가 작동하게 하다가 실제 도로주행에 들어가면 꺼지도록 조작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한 대학연구팀의 도움을 받아 이 속임수를 잡아냈다. 시험대상인 두 대의 폭스바겐 자동차는 시험센터에서 배기가스를 규제 한도 안에서 내뿜었지만 일단 도로주행에 들어가자 질소화합물을 무려 기준의 30~40배나 내뿜는 것을 확인했다. 이 추적 결과에 폭스바겐이 “잘못했다.”고 손들고 나왔다.
폭스바겐은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조작된 소프트웨어를 장착해 미국 시장에 판매한 자동차가 50만 대이고 전 세계적으로는 1,100만 대에 이른다. 폭스바겐은 이 차량을 모두 회수해 수리하는 비용으로 약 73억 달러를 계상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대가는 더 혹독할 것이 예상된다. 청정대기법에 따라 미국 환경보호청은 회수차량 1대 당 벌금을 최대 3만7,500달러 부과할 수 있다. 벌금만 약 180억 달러를 얻어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유럽연합을 비롯해서 세계 주요 폭스바겐 소비국 정부들이 조사에 나설 뜻을 비치고 있어 소송비, 수리비, 벌금이 천문학적 액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통치 아래 독일은 유럽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그리스 사태, 중국의 경기침체, 유로 위기에도 독일은 끄떡없었다. 그러나 폭스바겐 사태는 독일에게 뼈아픈 신뢰 추락의 펀치를 가한 것이다. 그것도 독일 내부에서 문제가 터진 점에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고용제일주의 기업정책의 한계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폭스바겐을 지배해온 전통적 가문, 노동자 그룹, 주정부가 유착관계를 유지하며 위기발견과 의사소통을 막아왔던 경영체제가 곪아터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일이 있다. 폭스바겐 사태는 궁극적으로 기업 세계에 어떤 신호를 던지는 사건일까. 사태의 발단은 환경규제이다. 이제 환경문제가 경제문제로 직결되어 있음을 강력히 말해주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은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방향을 바꾸어 세계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끼칠 환경문제의 다른 측면, 즉 기후변화 문제를 살펴보자. 지난 주 워싱턴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논의한 의제 중에서 미국 언론의 뜨거운 조명을 받은 사안이 기후변화 이슈였다. 작년 11월 탄소감축 시간표에 합의한 미국과 중국은 이번 회담에서 중국이 탄소배출권 판매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큰 진전을 보았다. 문제는 남아 있지만 12월 파리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1) 정상회담에서 국제적 합의가 이뤄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한국은 이미 탄소배출 감축 ‘37퍼센트’ 공약을 제시했다. 탄소배출 감축은 발등의 불이 되었다. 면밀한 준비가 없으면 한국 산업계는 큰 타격과 혼란에 휩싸일지 모른다. 정부는 ‘저탄소 사회’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 비전엔 새로운 에너지 수급 정책이 수반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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