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정몽준의 슈팅

구상낭 2022. 12. 24. 18:23

내일신문 2015-08-04 16:37:46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에 나서겠다는 정치인 정몽준의 발표를 접하는 순간 퍼뜩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했던 게 작년인데 그게 안 되니 FIFA회장 선거에 도전하겠다? 꿩 대신 닭이라는 얘기인가?"

그에게 따라붙는 화려한 경력을 떠올려본다. 7선 국회의원, 한나라당 대표, 현대중공업회장 그리고 대한축구협회 회장 등등. 그는 불만스러워할지 모르지만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를 가장 긍정적으로 대변해주는 호칭은 '대한축구협회회장'이 아닐까. '전 FIFA부회장' '대한축구협회명예회장'은 거기서 파생한 직함들이다.

축구는 속성상 정치적이다. 야구는 재미가 관통하지만 축구는 집단의 정서가 지배한다.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를 보니 신익희, 윤보선, 장택상, 장기영, 김우중 같은 쟁쟁한 정재계의 거물들이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었다.

축구협회회장은 전통적으로 정치적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많은 거물들이 나름 축구에 기여했겠지만 정몽준 회장은 2002년 월드컵 유치를 비롯하여 한국축구를 세계 무대로 올려놓는 데 매우 구체적 업적을 쌓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 회장의 FIFA회장 선거 도전은 자연스럽다.

국제 스포츠 조직의 양대 산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이다. 올림픽도 고대 그리스에서 나왔고, 축구와 월드컵도 서구에서 시작됐다. 모두 서양적이고 귀족적이다.

올림픽도 아마추어 정신이 퇴색하면서 어마어마한 돈벌이로 변했지만, FIFA는 그 한 수 위에 있다. 다양한 경기로 이뤄진 올림픽은 나름 민주적인 반면, 축구공 하나로 세계를 열광시키는 월드컵과 FIFA는 제왕적이다.

111년의 긴 FIFA역사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사람은 딱 8명이다. 후앙 아발랑제(브라질)를 제외하면 나머지 일곱 명은 영국(3명) 프랑스(2명) 벨기에(1명) 스위스(1명) 등 서유럽 출신 일색이었다.


FIFA의 전설이 된 쥴리메는 무려 33년을, 아발랑제는 24년을, 현직 제프 블라터는 17년을 집권했으니 폐쇄적인 조직임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다.

이런 제왕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이었기에 스포츠 사상 최악으로 불리는 블라터 회장의 부패 스캔들이 곪아왔는지도 모른다. 블라터는 지난 5월 5선에 성공했지만 부패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조기 퇴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내년 2월 FIFA 특별총회를 열어 후임자를 선출하게 된 것이다.

왕좌가 비어 있는 자리여서 FIFA권력을 노리는 야심가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외신 하마평의 선두주자는 미셀 플라티니. 1978~1986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의 미드필더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던 그는 현재 유럽축구연맹 회장으로 축구계의 중원을 차지한 형국이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는 정몽준 회장을 플라티니의 적수로 비중있게 다뤄서 눈길을 끌었다. 타임스는 그가 FIFA집행위원으로 오래 활동했던 점과 부패스캔들이 터지기 전부터 블라터 회장에게 FIFA의 투명성을 요구했던 점을 평가했다.

FIFA회장은 총회에서 선출된다. 총회를 구성하는 것은 각국을 대표하는 209개의 국가별 축구협회다. 영국은 예외로 4개의 협회가 총회 구성원이다. 회장에 선출되려면 105개 협회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국가를 직접 대표하는 것도 아닌 개별 축구협회의 대표를 상대로 득표활동을 하는 것은 대륙별로 순번이 할당되는 유엔사무총장 선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고 볼 수 있다. FIFA회장 선거는 국제 축구계의 네트워크 게임이 아닐까 싶다.


FIFA회장 선거 국내 전문가는 바로 정몽준 회장 자신이다. 그는 한일월드컵을 유치하고 FIFA부회장을 역임하면서 FIFA내막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의 인맥, 이미지, FIFA개혁 의지와 리더십 외에 별다른 방법이 있을까 싶다.

뉴욕타임스가 지적한 플라티니의 유일한 약점은 축구강국 위주의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209개의 회원국이 있지만 소수의 축구강국을 제외하면 소외받는 국가가 대부분이다. 블라터는 이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줘서 5선을 했다고 한다.

정몽준 회장은 도전의 길을 떠나며 "어렵지만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들만의 리그'를 깨고 부패한 FIFA를 개혁하겠다는 메시지가 분명하다면 가치 있는 도전이 될 것이다.

정 회장은 지금 그의 인생 여정에서 가장 적합한 골문 앞에 서 있는 슈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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