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5-01-19 20:57:47
톤당 가격 8,640원.
무슨 물건이기에 이렇게 헐값인가.
탄소 값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면 탄소(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 가격을 의미한다. 지난 12일 정부는 부산의 탄소배출권거래소 문을 열었다. 마치 주식시장에서 회사의 주식이 시시각각으로 변동하는 가격에 거래되듯이 탄소배출권도 그렇게 거래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에선 수년 전부터 배출권 거래시장이 형성되었다.
이제 기업은 전기료를 내기만 하면 마음대로 에너지를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부가 허용한 에너지 사용 할당량을 초과하면 거래소에서 다른 기업이 팔려고 내놓은 탄소 배출권을 사든가, 높은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언론은 이를 역사적인 일이라고 평가한다. 금융시장이 발달되고 발달되더니 온갖 파생금융이 나왔고, 이제 탄소배출권까지 거래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역사적 평가를 내릴 만하다.
‘탄소’란 말은 20년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교 화학 교실에서나 듣던 용어다. 그러나 21세기가 깊어지면서 탄소는 일상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말이 되어가고 있다. 탄소는 화학 용어에서 ‘경제 용어’로 뜻이 확대되고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언했던 이명박 정부는 2009년 한국의 2020년 온실가스 배출을 전망치에서 30% 감축한다고 선언했다. 온실가스란 지구의 복사열을 잡아 가둬서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를 말한다. 기후변화를 다루는 유엔기구는 더 이상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눈감아줄 수 없다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감축목표를 선언하고 미리 대체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기술을 개발해서 대응하자는 취지였다.
정부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이산화 탄소배출 허용 총량을 15억9,800만 톤으로 정하고 500여개 기업 각각에 배출권을 할당했다. 배출권 거래소의 작동원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100만 톤의 배출권 할당을 받은 A, B 두 기업이 있는데, A기업은 기술개발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높여서 90만 톤의 탄소만 배출한 반면, B기업은 할당 허용량을 10만 톤 초과해서 110만 톤을 배출했다고 가정할 경우 A기업은 10만 톤의 배출권을 돈을 받고 팔 수 있고 B기업은 10만 톤의 배출권을 사거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시장 거래를 통해 탄소배출을 조절해보자는 의도에서 서양인들이 머리를 써서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만들어낸 제도이다.
기업은 자유를 원한다. 규제를 싫어한다. 그래서 이 제도에 불만이다. 업계가 요구한 배출권 허용량 20억2,100만 톤을 20% 이상 깎아버렸기 때문이다. 기업이 이산화탄소를 현재대로 배출하면 12조 원 이상 배출권을 사는데 써야 한다는 얘기다. 업계는 국제시장에서 제품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배출권 허용치를 높여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포스코 같은 기업은 걱정이 태산 같다.
관점에 따라 다르다. 기후변화의 재앙은 국적에 무관하게 접근하는 위기다. 지구는 하나이고, 더구나 땅덩이를 둘러싼 대기에는 국경선을 그을 수 없다. 한국도 살을 빼는 아픔을 감수하고 탄소배출을 줄여야 할 국제 공동체의 책무가 있다.
미국의 생물학자 가레트 하딘은 1968년 ‘사이언스’에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 요지를 보면 배출권 거래제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마을에 공유지(共有地)가 있다. 이 땅에는 목초가 자라고 마을 사람은 누구나 비용을 들이지 않고 가축을 방목할 수 있다. 개별 목동의 입장에서 보면 가능한 많은 수의 가축을 기르려고 할 것이다. 이성적 존재로서 목동은 이 방법을 통해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축을 한 마리 추가해서 길렀을 경우 그가 얻게 될 이득은 가축 한 마리의 가격이다. 그러면 그 이득을 얻은 대가로 치러야 할 손실은 한 마리 가축이 풀을 뜯음으로써 생기는 목초의 상실 량이다. 그러나 목초 상실 양은 마을 농가 모두가 골고루 분담하게 된다. 따라서 목동은 될수록 많은 가축을 그 공유지에 기르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한 사람의 목동만이 아니다. 마을의 목동 모두가 똑같이 생각한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더 많은 가축을 기르려고 덤비게 되면 수용한계를 지닌 목초지는 황폐하게 되고 만다. 결국 공유지에서의 자유는 모두에게 파멸을 불러들이는 비극으로 끝난다.
하딘은 ‘공유지의 비극’의 가상무대를 중세 영국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를 둘러싼 대기층은 바로 공유지의 비극 무대가 될 수 있다. 모든 나라 모든 기업이 자유로이 탄소를 배출한다면 지구는 금세기 안에 기후변화의 재앙을 맞게 될지 모른다.
탄소배출권 거래는 공유지의 비극을 막는 하나의 예방제이다. 석유 값이 떨어진다고 과거와 같이 화석 에너지를 펑펑 쓰는 시대는 아니다. 재벌 회장이 의식을 바꾸면 세상도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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