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세월호의 3단계 비극

구상낭 2022. 12. 11. 23:04

 

내일신문

2014-05-01 15:30:19


 

 

 

 

수면 위로 살짝 나와 있던 세월호의 선수(船首)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광경을 텔레비전에서 보았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단월고 아이들 200여 명이 저 배 속 어디에선가 공포에 질린 채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제 절망적이구나.” 하는 생각만 스쳤다.

이제 우리 뇌리에 남아 있는 세월호의 이미지는 고래 주둥이 같은 청색 선수와 그 배안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하는 꽃다운 아이들의 얼굴이다.

먼 옛날 대학생 때 내가 탄 배가 조난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나는 배타는 것이 무서웠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으니 방학 때는 도리 없이 배를 타야 했다. 여름방학을 집에서 보내고 제주에서 목포로 향하는 ‘안성호’라는 여객선을 탔다. 세월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작고 낡은 400여 톤짜리 배, 뱃내음이 코를 찌르는 3등 객실엔 수백 명의 승객이 꽉 차서 복도에 기대고 앉은 사람도 수없이 많았다.

저녁 때 출항한 배가 밤 항해를 계속하여 진도의 울둘목을 통과하던 새벽녘에 배가 갑자기 기우뚱하면서 한쪽으로 기울었고 반대편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순간 배가 잘못됐다는 직감과 함께 공포가 엄습했다. 승객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웅성대기 시작했다. 어른 몇 명이 “이럴 때 움직이면 위험하다. 알아보겠다.”며 갑판으로 뛰어 올라갔다. 잠시 후 선내 방송이 나왔다.

“배가 썰물에 밀리면서 개펄에 좌초했습니다. 구조 요청을 했고 곧 배가 올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그러니 절대 움직이지 말고 선실에 있어야 합니다.”

이런 요지의 선내방송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를 많이 타봤다는 어른들이 방송에 동조하며 “배가 이렇게 좌초됐을 때 움직이면 위험하니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승객들은 방송 지시에 따랐다. 구조요청을 했으니 안심하라는 선내방송, 그리고 움직이면 위험하다는 승선 경험자들의 말이 먹혀들었다. 불안했지만 기다리면 구조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구조하러 왔던 배가 다시 뻘 속에 좌초하는 아찔한 사고가 생기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다행히 몇 시간 후 썰물을 이용해서 안성호는 다시 항해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원시적인 사고대응이었다. 승객에게 구명조끼도 주지 않았고, 배 밑창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게 했다.

낡은 안성호를 타기가 싫어 그 다음 해엔 비슷한 크기의 서귀포-부산 정기 여객선 남영호를 이용했다. 새 배라는 소문 때문에 현혹되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페인트칠을 해서 그렇지 남영호도 일본에서 사들여온 중고 배였다. 그해 겨울 남영호는 과적과 정원초과로 무리하게 운항하다 남해에서 뒤집혀 323명의 승객과 함께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배의 크기가 10배 20배 커지고 호화시설을 갖췄을 뿐이지 배를 부리는 관행, 선박안전에 대한 의식구조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세월호 침몰과정이 변명의 여지없이 이를 증명해 보여줬다.

세월호 침몰은 3단계 비극이다.

선박의 원리를 살해한 것이 첫 번째 비극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보아도 선사(船社)는 배의 속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우를 범했다. 화물적재량과 정원을 늘리기 위해 배의 무리한 개조를 감행했고, 안전 운항의 생명과 같은 배 밑바닥의 평형수(平衡水)를 빼버리고 대신 화물을 과적해서 배의 복원력을 파괴했다.

선장이 조난 후 승객 탈출을 지휘하지 않고 도망친 것이 두 번째 비극이다. 어린 학생 2백여 명을 선실에서 기다리게 해놓고 팬티만 걸친 조난자로 가장해서 구조선에 올랐다. 선장의 이 행동이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선장이 떠나버린 배에서 아이들은 누군가 그들을 구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죽어갔다.

정부가 신속한 구조와 재난관리에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이 세 번째 비극이다. 배와 함께 아이들이 가라앉는 순간 정부대책은 비전문가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이다가 한 사람도 구출하지 못하고 말았다. 물론 침몰하는 거대 여객선에서 승객을 구출하는 것은 방송사 스튜디오에 앉아서 구경하는 것과는 판이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박조난 관리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제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야단이다. 대통령도 입술을 깨무는 것 같다. 그러려면 개혁이 필요한데, 한국 사회는 너무나 먹을 것이 많은 기득권의 바다이다. 재벌과 관료체제가 자라면서 생긴 기득권의 암초와 그 네트워크가 견고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 수중 암초들을 제거할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바다는 무섭다. 항상 배를 전복시킬 태세가 되어 있다. 과거에도 그렇고, 4월 16일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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