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4-04-14 15:47:59
카이스트 교수가 제작한 '접는 전기자동차'는 어린이들의 놀이터였다. 버튼만 누르면 자동차가 반으로 접어지니, 좁은 공간에도 주차할 수 있는 일종의 컨셉트카다. 기존 경트럭의 엔진 대신 전기모터를 장착해 만든 개조 전기트럭 운전석에는 감귤 과수원 농부들이 기기를 만지며 기웃거렸다. 운전석이 왼쪽이 아니라 중앙에 위치한 프랑스 미아전기 '카다부라'의 운전대를 잡고 떠드는 이들은 청바지 차림에 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들이었다.
지난 3월 중순 제주도에서 열린 ‘제1회국제전기차엑스포’에 모여든 관람객은 일주일간 연인원 4만7,000명이었다. 이 행사를 지원했던 산자부, 환경부, 제주도는 물론 민간인으로 구성된 엑스포 조직위원회조차 예측 못했던 인파였다. 준비기간도 짧았고, 엑스포 전문 인력도 거의 없었고,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도 소규모였는데도 엑스포는 결론적으로 ‘대박 쇼’였다.
접는 차, 개조전기트럭, 카다부라는 사실 찬조 출연자였다. 주연은 기아차의 '쏘울'과 '레이', 르노삼성의 'SM3ZE', 한국지엠의 '스파크', BMW의 'i3', 닛산의 '리프' 등 국내외 완성차 메이커들이 회사의 미래를 걸고 야심차게 내놓은 전기자동차들이었다. 특히 소재와 디자인 등 초기 개발단계에서부터 전기자동차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i3'와 '리프'에 대한 관람객들의 관심은 유난했다.
이번 엑스포를 계기로 제주도는 전기자동차의 시험대(test-bed)로서의 위상을 국내외적으로 과시했다. 전기자동차의 운행에 적합한 넓이와 지형, 주행 거리, 기복이 심한 기상변화, 자동차 시장의 크기 등으로 국내외 전기자동차 전문가들로부터 “제주도가 이상적인 전기자동차 테스트베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 협력이 효과를 본 셈이다. 정부가 제주 등 10개 도시를 전기자동차 보급 시범지역으로 선정해서 보조금과 세제혜택 등 각종 특혜를 제공하고 충전시설 등 인프라 설치에 적극 나섰기에 전기자동차와 제주도의 궁합이 잘 맞아 떨어졌다. 외국 메이커들이 엑스포에 적극 참여한 것은 전기자동차의 시험대(test-bed)로서 제주도의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엑스포 기간 중 전기자동차를 구입하겠다는 제주도 주민들의 행렬이다. 제주도가 256대의 전기자동차 공모신청을 받은 결과 1천654명의 신청자가 몰려서 평균 7.3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차종별 신청 대 수를 보면 기아 ‘쏘울’이 596대, 르노삼성 ‘SM3.Z.E.’가 512대, BMW ‘i3’가 249대, 기아 ‘레이’가 159대, 닛산 ‘리프’가 97대, 한국지엠 ‘스파크’가 39대 순이다. 얼핏 보면 ‘쏘울’이 선두로 나서 기아차가 승리자 같지만 가격이 비싼데도 BMW i3 신청자가 의외로 많은 것은 장차 자동차 소비 패턴이 과거와 다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비록 소규모였지만 이번 전기자동차엑스포가 우리 사회에 울리는 메아리는 적지 않을 것이다. 전기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제주도의 지역문제로 국한해서 바라볼 수는 없다. 세계 약 10억 대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뿜어내는 화석연료 매연에 지구와 인간이 같이 병들고 있다. 특히 미세먼지가 인체의 건강에 치명적인 것이 알려지면서 매연 문제의 해결이 심각한 이슈로 떠오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동차 매연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해답은 배기통 없는 전기자동차나 혹은 연료전지차(수소차)다. 한때 연료전지차가 내연기관의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의 세계적 추세는 전기자동차로 급속히 기울어지고 있다. 미국 테슬라의 ‘S모델’, 독일 BMW의 ‘i3’, 일본 닛산의 ‘리프’가 매우 의미 있는 기세로 전기자동차 상용화의 선두주자로 나서면서 선진국 자동차 소비층의 마음을 심란하게 흔들고 있다.
정부 및 지자체 그리고 자동차 메이커가 눈을 똑바로 뜨고 멀리 바라보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첫째, 중앙 정부가 할 일은 환경 및 에너지문제와 자동차 산업의 발전방향을 체계적으로 연계하여 바람직한 교통 및 산업 정책을 선도해야 한다. ‘그린'(green)과 ’스마트‘(smart)가 자동차 소비 트렌드가 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제주도는 전기자동차의 테스트베드로서 위상을 확립하는 대신 전기자동차 수요 증가에 따른 전력수요를 풍력과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로 충족시키겠다는 결연한 정책적 의지를 보여야 한다. 육지의 화력발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끌어다 쓰면서 전기자동차 테스트베드로서 자리매김하겠다는 생각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
셋째, 전기자동차 메이커로서 현대자동차의 도약이 요구된다. 엑스포 기간 중 미국의 ‘디트로이트뉴스’(Detroit News)는 전기자동차엑스포를 주최한 한국에서 현대차는 보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다행히 기아의 ‘쏘울’이 공모 신청 대수에서 선두로 나서 체면을 유지했지만, 현대차가 전기자동차 시대에 한발 더딘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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