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공무원이 성하는 나라

구상낭 2022. 12. 24. 18:49

내일신문 2016-01-04 23:39:05

 

병신(丙申)년 첫 날 노트북을 열었다. 새해맞이 사진 스케치가 즐비했다. 대부분 동해안이나 산위에 올라 해맞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었는데, 유독 눈을 끄는 색다른 사진이 있었다. 서울 노량진 고시 학원가의 공무원 취업 준비생들의 수업 모습이었다. 수백 명이 수업 받는 모습이 오늘이 1 1일인가?”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그건 학원가의 변화를 모르는 필자의 생각일 뿐이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노량진 학원가는 ‘1 1일 휴일이 공무원 시험 공부하기에 바쁜 날이라고 한다. 기성세대에겐 각박한 취업 현실로 보일지 모르나 많은 대학생과 취업준비생들에겐 보편적 일상이 되었다.

오래 전부터 지방의 대학 교정에 가장 크게 나붙는 현수막이 공무원시험 합격자 명단이다. ‘9급 공무원시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OO대학 교수일동이란 현수막이 빌딩에 크게 걸린다. 합격자는 네댓 명이다. 이런 현수막이 서울의 대학 교정에도 늘어간다. 공직이 공부 잘하는 한국 대학생들을 빨아들이는 취업 허브가 되었다.

정부는 2011년부터 5급 국가공무원 민간경력자 일괄채용시험제도를 도입했다. 다양한 경력을 지닌 민간 인재를 공직에 유치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 제도는 신선한 발상으로 평가되었다. 정부는 2015년에 이 제도를 확대하여 경력직 7급 공무원을 공모했다. 80명 모집에 무려 2,744명의 전문직 종사자가 몰렸다. 32.6  1의 경쟁률이었다.

얼마 전 발표된 합격자 명단을 보고 놀랐다. 합격자 80명 중 석사 학위 보유자가 33명 박사 학위소지자가 8명이었다. 1963년 공무원채용시험이 실시된 이후 석사 이상 학위 보유자가 합격자의 절반을 넘은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LG전자 KT 등 대기업 연구원과 회계사, 약사 등 전문직 종사자도 많았고, 특히 회계사는 전체 합격자의 10%에 육박하는 7명이라고 한다.

사무관인 5급과 달리 하위직인 7급 공무원 모집에 이런 고학력 현역 전문직이 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의 일반적인 분석은 경기 침체로 본격화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 칼바람 속에 신분과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 시험에 고학력자가 몰렸다는 것이다. 요즘의 사회 분위기가 잘 반영된 평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신문 방송 뉴스마다 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소리로 요란하다. 어려운 경제사정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되살아나는 일본 경제와 해일처럼 덮쳐오는 중국 경제 사이에 낀 한국 경제가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다고 한탄하는 소리에 우울해진다. 이를 반영하듯 울산 포항 거제 광양 등 높은 개인소득을 구가하던 산업 도시에서는 대량 해고가 일어나고 상가는 문을 닫고 있다. 서울의 금융가도 퇴직 바람이 불고 있다.

그렇다고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도 아니고 1억 원 이상 고액연봉자가 작년보다 훨씬 많이 늘어났는데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는 현실이 정말 혼돈스럽다. 청년 취업은 더욱 어려워지고 이미 취업한 사람은 명예퇴직이나 해고를 걱정해야 하는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이 몰리는 것, 민간 부분에서 일하던 직장인들이 경력직 공무원 시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정년이 보장되고, 퇴직 후에도 죽을 때까지 연금이 나오니 공무원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있겠는가. 젊은이들의 눈에는 공무원이 평생직장으로 보인다. 공무원하면 박봉을 연상하게 되지만, 사회 평균치로 보면 봉급이 마냥 적다고만 할 수도 없다. 해마다 호봉이 오르고 각종 수당 등이 보태진다.

그러나 젊은 청년 수십만이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는 사회현상은 비정상이다. 뭔가 불길하게 느껴진다. 않다. 정부는 인력 수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용정책 차원에서 공무원 채용 인원을 결정하는 것 같다. 지자체의 행정기관 사무실에 가보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인원이 빽빽이 앉아 있다.

공무원은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쓰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는 돈을 버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돈을 쓰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국가가 활력을 갖고 부를 축적하려면 돈을 버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아야 하고 똑똑한 인재들이 민간분야로 활발하게 흡수되어야 한다.

경제력 세계 15위 권 안에 있는 한국 사회의 저력은 하루아침에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옛날과 같은 탄성으로 갈 수 없다는 진단에 전문가들은 동의한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9급 공무원 채용시험으로 몰리고 전문직 직장인들 수천 명이 7급 공무원이 되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어두운 미래를 말해주는 것 같다. 마치 21세기 한국 사회가 19세기 이전 조선의 관료 사회로 회귀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