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5-07-12 18:09:43
정부가 지난 주 ‘2030년 온실가스 37% 감축안’을 발표하자 산업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기업을 대변하는 경제신문들이 소리 높여 정부 결정을 질타하는 논평을 쏟아냈다. 산업계의 입장에선 온실가스 감축이 바로 기업의 비용증가를 의미한다.
정부의 당초 감축안은 최저 14.7%에서 최고 31.3%(제4안)의 구간에 있는 4개의 시나리오 중 하나를 공론 수렴 과정을 통해 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충분한 설명도 없이 37%를 감축결정을 내리고 유엔에 보고해버렸으니 산업계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어서 아우성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정책 결정의 막판에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온실가스감축 정책은 한마디로 국정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최초 정부안에서 37%로 껑충 뛴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전화 통화 때문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지금 오바마 대통령은 12월 파리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 대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미국의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일상의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려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실가스37%감축이 무엇을 뜻하는지 감이 없다. 그것도 2030년의 일이라는데 말이다. 그러나 정부의 값싼 에너지정책에 물든 기업인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산업의 실상을 무시한 정책으로 한국경제를 저성장의 늪에 빠뜨리고 결국 망가지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 이 시점에서 본다면 산업계의 주장은 타당하다. 경제가 나빠진다는데 1%도 줄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15년 후, 30년 후를 생각하면 관점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산업혁명 시점을 기준으로 지구 기온 상승을 섭씨 2도 이하로 묶어 놓지 못하면 인류문명을 지탱하던 기후가 요동치며 슈퍼태풍, 대가뭄, 생물다양성 파괴, 병원균의 창궐, 해양수위 상승에 의한 대량난민 등 기후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과학적 예측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큰 나라가 책임질 문제이니 한국은 적당히 눈치를 보며 그 동안이라도 실익을 챙기면 될까. 그러나 기후변화의 재앙은 무차별적이다. 우리 후손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기후변화를 최소화하는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고 이에 적응하는 것은 경제발전 정도로 보거나 국민의 의식수준으로 볼 때 당연히 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
미래 지향적으로 경제를 생각한다면 한국의 에너지 정책도 움직이고 변해야 할 시점이다. 사람은 변하는 걸 싫어한다. 기득권을 누릴수록 옛 것에 안주하려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후변화라는 외부충격에 의해 에너지 패러다임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저탄소 추세로 변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는 온실가스 감축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탄소세 부과를 거론하는 상황까지 왔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는 무역차별을 받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에너지 정책의 기어를 ‘버티기’가 아니라 ‘변하기’로 전환해야 할 때다.
37% 감축안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국제적 약속을 했으니 물러설 수 없는 국가적 숙제다. 돈 주고 배출권을 사기라도 해야 한다. 정부, 기업, 국민이 모두 비장한 각오로 나서야 한다. 또한 이 과제는 2030년까지 기다렸다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기후변화의 위험을 잘 홍보하고, 자라는 세대에게 교육하고, 일반 국민에게 불편과 부담과 고통을 솔직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에너지 수급 시스템의 개혁을 혁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화력, 원자력, 재생에너지의 배합(MIX)정책에 대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특히 정부는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부정적 예측을 이 기회에 불식시켜야 하며 합리적인 전력가격 정책으로 재생에너지 활로를 터야 한다. 아울러 온실가스 감축은 교통, 건축 등 사회전반에 종합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산업과 기후변화를 통합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정부조직 개편이 필요할지도 모르며, 한국 전력도 새로운 변화 요구에 부응하게 개혁해야 한다.
이제 우리 국민도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온실가스 감축에 협력해야 할 때가 됐다. 에너지 문제 해결에 물꼬를 틀 수 있는 전기료 인상도 합리적으로 수용하는 성숙도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라인강의 기적을 이뤘던 독일 국민이 고통을 감내하고 ‘신재생에너지 기적’을 이룬 위대한 경험을 배울 필요가 있다. 세계 역사상 산업국가로 성공했던 나라가 완전히 몰락한 예가 있던가. 화석연료를 줄이고도 경제를 발전시킬 방안을 찾는 게 똑똑한 인재와 돈을 가진 정부와 기업이 수행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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