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주도 지역 기관)2015-06-11 23:39:38
부시 가문의 3번째 야심가 젭 부시가 15일 미국 대통령선거 공화당후보 지명전에 출사표를 던진다.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던 그가 출마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전의 열기는 일찍 타 오르지 않을까 싶다.
미국의 45번 째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은 2016년 11월 8일, 아직 1년 5개월이 남았다. 민주 공화 양당 후보를 가늠해볼 수 있는 뉴햄프셔 예비선거까지는 6개월 이상, 양당의 후보가 확정되는 지명대회까지는 무려 1년 이상 시간이 있다. 그럼에도 조기에 관심과 호기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24년 만에 부시 가문과 클린턴 가문의 대회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일찌감치 지난 4월 출마를 선언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 더 유명한 힐러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로서 클린턴 집권 8년 동안 백악관에 군림했다. 그녀는 이제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을 정도로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에게 노출된 정치인이다.
힐러리는 안방 정치로만 만족할 수 없는 야심가적 DNA를 가진 여자였다. 클린턴 권력의 막바지에 이르자 그녀는 독자적인 권력 기반을 향해 점프했다. 2000년 남편의 후광을 업고 뉴욕 주에서 연방 상원 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이때부터 미국인들은 그의 백악관을 향한 야망을 확실히 읽기 시작했다. 2006년 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한 그녀는 2008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으로서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전에 도전했다. 초반 매우 유력해보였으나 복병 버락 오바마에 걸려 넘어졌다. 미국 민주당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정치 운명이란 오묘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연약한 권력기반을 보완하기 위해 선거전에서 정적이었던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했다. 힐러리는 상원의원을 내던지고 국무장관직을 수락했다. 오바마 1기 4년간 국제 정치의 중심무대를 누빈 후 2013년부터 공직을 버리고 대통령선거 준비에 돌입했다. 백악관 퍼스트레이디, 연방상원의원, 국무장관으로 쉴 틈 없이 이어졌던 그녀의 경력은 누가 보아도 완벽한 대통령 수업 과정이라 할 만하다.
1992년 애송이 같은 빌 클린턴 아칸소 주지사가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자 후보의 부인이 관심이 대상이 되었다. 힐러리는 과거 우아하면서도 조용한 내조자의 이미지를 이상형으로 삼았던 미국인들의 선입견을 단숨에 깨버리고 당돌한 변호사의 이미지로 데뷔했다. 당시 민주당 선거캠프는 인구에 회자하던 광고어 “하나를 사면 하나는 공짜”(Buy one get one free)를 선거전에 패러디 하여 “클린턴을 찍으면 힐러리를 덤으로 얻는다”는 이미지 선거 전략으로 찬반 논쟁을 불렀다. 사실 이런 동반 후보 전략은 미국인들의 호감보다 반감만 사는 것 같았다. 클린턴의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똑똑한 힐러리의 이미지가 아니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앨 공어 상원의원을 선택했던 전략이었다.
힐러리의 영민함과 내공은 빌 클린턴에게 스캔들이 터지는 위기 때 발휘되었다. 선거운동 기간 중 간단없이 튀어나오는 클린턴의 염문설, 그리고 1998년 대통령 재임당시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와의 정사설로 위기에 처했을 때, 힐러리가 발휘한 냉혹한 이성적 대처 방식은 남편을 구했을 뿐 아니라,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헤쳐 나가는 힐러리의 위기 제어 능력의 단면을 미국인들의 뇌리에 심어줬다.
힐러리가 없었다면 클린턴 대통령의 영향력은 8년 단발로 마무리됐을 공산이 높다. 힐러리는 클린턴 대통령을 매개로 20여년에 걸쳐 하나의 신흥 정치 가문을 일구어 온 셈이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들어갔던 백악관을 이제 스스로 쟁취할 마지막 장정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전은 마라톤과 같은 긴 여정이어서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다크호스가 튀어나온다. 그렇지만 현재까지의 추세를 보면 민주당에서 힐러리의 독주 상태는 쉽게 꺾일 것 같지가 않다. 민주당 후보가 여럿 나왔지만 힐러리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고만고만한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 예비선거는 물론 본선에서 남편 클린턴 전 대통령은 막강한 지원군이 될 게 분명하다.
힐러리가 성공하면 미국 역사에 두 가지 기록을 동시에 새기게 된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그리고 최초의 부부 대통령. 클린턴 전 대통령은 최초의 대통령 남편이 된다.
최근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백악관 출입기자 69명을 대상으로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63%의 기자가 클린턴 힐러리 전 국무장관을 1위로 꼽았고, 21%가 젭 부시 전 플로리다주지사를 2위로 꼽았다. 백악관 틀 속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은 정치를 읽는 감각이 뛰어나지만 방대한 미국의 민심을 읽는 선거 눈까지 밝은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현재의 추세를 읽어내는 그들의 안목을 인정해야 한다.
젭 부시는 힐라리 클린턴에 비하면 덜 알려지고 덜 검증된 인물이다. 그의 경력은 두 차례에 걸쳐 플로리다 주지사를 역임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 지형에서 차지하는 플로리다 주지사의 위상이 적지 않은데다 젭은 주지사로서 능력도 인정받았고 무엇보다 대중적 인기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젭 부시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역시 부자 대통령을 배출한 가문의 유산이다. 미국 역사상 아버지와 아들이 대통령이 된 것은 건국 초기 한 번뿐이다. 젭 부시의 할아버지 프레스컷 부시는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될 정도였고, 그때부터 부시 가문은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왔다. 오늘날 부시 가계야말로 20세기 후반 케네디 가문에 비견할 수 있는 정치권력의 산실인 셈이다. 젭 부시는 아버지와 형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막강한 선거 전략팀과 싱크탱크를 동원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소수자, 특히 흑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라틴계도 대체로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젭 부시는 미국 최대 소수민족인 라틴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바로 부인이 멕시코 여자이기 때문이다. 젭 부시는 멕시코에 거주하면서 부인을 만났고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가 플로리다 주지사에 출마했을 때 쿠바 출신 등 라틴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것도 이런 가족적 배경 때문이다.
그러나 힐러리가 민주당 경선에서 독주하는 데 비해, 젭 부시는 공화당후보 예선에서부터 첩첩 산중이다. 대통령 아버지와 대통령 형을 두었던 그에게서 미국인들은 어떤 새로운 리더십을 찾을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안고 있다. 이라크 전쟁을 놓고 형을 옹호하다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모순에 빠진 최근의 행보가 이를 말해준다.
미국의 정치 평론가들에 의하면 젭 부시의 가장 큰 딜레마는 형이다. 골수 공화당 지지자들의 지원을 받아야 공화당후보 지명을 받는데 유리하다. 그래서 젭 부시는 형의 노선과 지원세력에 영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게 본선에서는 부동층 유권자의 등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 된다. 형이 예선에서는 약이 되지만 본선에서는 독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젭 부시가 예선을 통과해도 본선에서 힐라리 클린턴은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다. 백악관 기자들의 반응에서 보듯이 현재로선 젭 부시가 힐러리에게 덤비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아 보인다.
하지만 필자가 뉴욕특파원으로 취재하던 1992년에 관찰한 미국 대통령 선거전을 반추해 보면 선거는 알 수 없다. 그때 빌 클린턴의 도전이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았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바로 1년 전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군을 몰아내고 걸프전을 승리한 여세를 몰아 선거 1년 전 인기도 80%를 유지했고 민주당 전당대회 전까지만 해도 난공불락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어디 있는지조차 잘 모르던 아칸소 주지사가 걸프전의 영웅이자 현직 대통령인 조지 부시를 깨 부셨으니 영광과 패배의 갈림길이 그렇게 극명해 보일 수가 없었다.
어쨌든 2016년 대선은 힐라리와 젭 부시의 출연만으로도 훌륭한 흥행극이다. 이들이 공히 양당 후보가 된다면 세기의 대결이 될 것이다.
미국의 언론은 종종 대통령을 가리켜 ‘선출된 제왕’이라고 표현한다. 세계 최강국의 국가원수로서 옛날 군주에 손색없는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나온 얘기다. 대통령의 가족 구성원들은 막강한 권력이 행사되는 것을 밥 먹듯 보며 자라고 생활했다. 비유하자면 퍼스트레이디는 현대판 왕비요, 자녀들은 ‘왕자나 공주’다. 힐러리와 젭 부시의 대결이 성사된다면 이는 왕비와 왕자의 대결처럼 사람들은 상상할 것이다.
이들 미국 로얄패밀리의 대결에서 한 사람이 대통령으로 등극할 공산이 한결 높아지고 있다. 과연 대통령의 가족 중 한 사람이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은 국가에 바람직한 일인가.
이미 언급했듯이 미국에서 부자가 대통령이 된 사례는 부시 가문 외에 독립 초기 2대 존 아담스 대통령과 그 아들인 6대 존 퀸시 아담스 대통령을 들 수 있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 아래서 초대 부통령을 역임한 존 아담스 대통령은 높은 학식을 갖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서 미국 독립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정적이자 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과의 불화로 정치적으로 고전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아들인 존 퀸시 아담스 대통령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훌륭한 외교적 업적을 많이 남긴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힐러리가 성공한다면 다시 한 번 미국사회에선 ‘하나를 사면 하나는 공짜’라는 24년 전 힐러리 버전이 클린턴 버전으로 바뀌어 인구에 회자될지 모른다. 과연 이 경우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은 남편인 전 대통령에게 어떤 역할을 줄 것이며 빌 클린턴은 어떤 행동을 보일까. 미국 역사에 없던 일이어서 생각만 해도 흥미로운 상상이다.
왕조국가가 아닌 민주국가에서 대통령 등 최고 통치자의 자녀, 형제 또는 배우자가 최고 권좌에 오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바로 한국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등장한 케이스다.
국민 모든가 참여하는 현대 국가의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의 능력보다는 미디어를 타는 이미지가 당락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기능이 복잡해지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선거를 통해 훌륭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유명 정치가문은 높은 지명도와 공고한 지지세력, 그리고 선거전의 노하우를 쉽게 동원할 수 있어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대통령후보 노릇을 잘하는 것과 대통령 노릇을 잘하는 것은 다른 것 같다.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대통령 가족은 지명도에서 선거에 일단 유리하다. 그러나 로열패밀리 출신이 반드시 훌륭한 정치를 한다는 보장은 없다. 국가 최고지도자는 시대흐름을 읽고 헤쳐나가는 통찰력과 돌파력, 결단력 그리고 위기관리 능력이 요구되는 자리다. 로얄패밀리 출신으로 이런 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인물은 소질과 경험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면서 유능한 지도자가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가족으로부터 전수받은 정치 경험이 오히려 국가를 이끄는 데 부작용과 마찰만 일으키면서 국민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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