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관련

강정과 박근혜정부

구상낭 2022. 11. 23. 12:51

제주도 관련 2013-02-21 10:31:00

 

지금은 제주도가 관광지로 또는 동중국해의 전략적 요충지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농업이 국가의 산업기반이었던 반세기 전만 해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땅이었다. 화산재로 이뤄진 토질은 척박하고 비가 내려도 물기가 땅속으로 곧 빠져 물이 고이지 않는다. 폭우 때가 아니면 개천이 말라 있다. 그래서 제주도는 논농사가 어렵다.

 

그런데 예외적인 마을이 있다. 바로 해군기지 논란으로 세인의 관심을 끌어온 강정이다. 제주올레 7코스의 쉼터로 유명한 풍림콘도 리조트는 평상시에도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바다로 흘러내리는 두 개의 하천, 즉 강정천과 약근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두 하천 외에도 강정 인근 곳곳에 용천수가 솟아나서 바다로 흘러간다. 강정(江汀)이란 지명이 생겨난 유래다.

강정은 부촌이었다. 토질도 좋고 물이 좋으니 제주도 다른 곳에서 짓기 어려운 논농사가 가능했다. 물론 밭농사도 잘 됐다. 지금도 강정은 백합 등 제주도 원예작물의 주산지다. 그래서 예부터 ‘일강정’(一江汀)이란 말이 전해온다. 제주도에서 최고 좋은 땅이 강정이라는 뜻이다.

 

겨울에도 따뜻해서 살기 좋았다. 범섬 너머 파도를 타고 봄이 스멀스멀 밀려오면 구럼비 해변에는 들배추꽃이 노랗게 피었고, 해녀들은 물질하러 바다로 첨벙첨벙 들어갔다. 농촌이자 어촌인 강정은 도시화가 진행되기 전부터 큰 마을이었으며 성씨나 인간관계로 얽혀져서 공동체 의식이 강했다.

 

제주해군기지 계획이 한창 얘기되던 2000년대 초만 해도 이 마을이 국가적 논란의 초점이 될 줄은 강정 주민도 몰랐고, 제주도 도민도 몰랐다. 해변의 겉모습만 보았을 때 전통적 항구의 조건인 만(灣) 형태는 없고 현무암 바위가 일자(一字)로 늘어선 망망 해변에 대규모 군항을 만드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더구나 오래전부터 제주해군기지로 더 좋은 군항조건을 갖춘 후보지가 거론되고 있었다. 해군이 강정을 선택한 것은 주민의 동의라는 절차적 문제를 통과하는 데 너무 매달렸기 때문인 것이다.

 

해군의 이 판단이 오산이었음은 강정해군기지건설을 둘러싼 지난 8년의 우여곡절이 설명해준다. 국가적으로는 지역과 정부의 대립이라는 앙금과 낭비를 불렀고, 지역적으로는 마을공동체에 심각한 상처를 남겼다. 인구 1천9백 명 강정의 전통적인 마을공동체 의식은 해군기지를 놓고 찬반으로 갈리면서 회복불능으로 파괴되었다. 향약에 의해 아름답게 유지되어온 자치능력은 완전히 상실됐다. 절차적 문제만 쉽게 통과하려 했던 해군과 지방정부의 안이한 태도가 부른 화근이었다. 본질적으로 보면 정부가 국가 전략시설을 건설하면서 국가와 지역의 미래를 조화롭게 생각하며 뚜렷한 원칙과 책임성을 갖고 나서지 못한 것이 강정사태를 키워놓은 원인이다.

 

이런 아쉬움 속에 강정해안은 지금 해군기지로 변신 중이다. 몇 년 후면 강정은 구축함과 잠수함이 왕래하는 해군기지가 되어 있을 것이며, 강정을 중심으로 새로운 해군 타운이 형성될 것이다.

 

해군이나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해군기지 완공과 함께 문제가 풀린 것으로 간주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역의 관점에서 보면 강정 마을의 상처가 남아있고, 해군기지가 지역의 주산업인 관광발전에 끼칠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따라서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가 지난 8년간 두 정부를 거치면서 부각된 문제점을 잘 해석하고 진정성과 지혜를 모아 강정해군기지의 매듭을 풀어줘야 할 때다.

 

우선 부서진 강정마을 공동체를 회복할 물꼬를 터줘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국가정책에서 비롯된 상처이므로 정부가 대범하게 나서야 한다. 지방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강정의 상처를 그냥 둔 채 장차 해군 가족을 그곳에 살게 하는 것은 주민은 물론 해군가족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절차와 권위에 얽매이지 말고 이런 임무를 한시적으로 수행할 ‘특사’같은 공직을 활용해서 탁상이 아닌 현장에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다음 민군복합항의 논쟁을 잠재워야 한다. 군 당국으로서는 생래적으로 민군복합이란 개념자체가 탐탁지 않을 것이다. 해군의 의도에 따라서는 이름만 민군복합이 될 공산도 크다.

 

중앙정부나 해군은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제주경제의 기반은 관광이고, 제주도 해안경관의 하이라이트가 서쪽 산방산에서 동쪽 섭섬까지 이르는 해안선이다. 강정은 바로 그 한복판에 위치한다. 제주관광의 한복판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솔직히 제주도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국가 차원에서도 강정해군기지는 지혜롭지 못한 선택이었다. 그 선택을 물릴 수 없다면 해군은 제주관광과 같이 해야 할 부채를 진정성을 갖고 안아야 한다. 크루즈선박의 톤수를 놓은 논쟁을 넘는 것이어야 한다.

 

강정 해안에 봄이 상륙하고 있다. 지혜롭지 못한 선택을 지혜롭게 보완하는 것이 박근혜 정부가 이 봄에 풀어야 할 매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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