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2-08-21 10:17:01
박종우 선수의 “독도는 우리 땅” 퍼포먼스의 여진이 깊다. 괜히 국제사회에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각인시키는 역효과만 낳은 것 같다. 물론 의도적이기 보다는 환희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올림픽의 이상이나 실익, 어느 측면에서 보더라도 개운치 않다. 이런 퍼포먼스가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해 하는 일본 선수들을 우리 선수들이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며 위로해주는 스포츠맨쉽을 발휘했다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국가별로 메달집계에 의해 참가국의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 또 올림픽이 체제 또는 정치 선전장이 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올림픽 운동은 국가별 경쟁이 아니라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와 팀의 경쟁이라는 것이 올림픽 운동의 이상(理想)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올림픽은 정치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아 굴절되고 다시 복원되어 왔다. 올림픽 종합 성적을 놓고 국가주의가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렇게 국가 간 경쟁 정서를 부추기는 것은 참가국의 정치문화, 국민감정, 국제관계 등이 혼합되어 일어나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를 앞장서서 만들어가는 건 각국의 국가올림픽위원회(NOC)와 매스미디어다.
국가별 등수를 매기는 방법은 금메달 수를 위주로 하는 방법과 총 메달수를 기준으로 하는 방법이 있다. 미국의 미디어들은 총 메달수를 기준으로 하고, 영국의 미디어들은 금메달을 기준으로 했다. 우리나라는 금메달에 의한 종합순위를 당연시하는 것 같다. ‘1등’은 집단적 잠재심리 속에 녹아있는 한국인의 정서라는 생각이 든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이 거둔 성적은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에 이어 5위(금메달13개)다. 대단하다. 일본 독일 프랑스를 뛰어넘었다. 총 메달집계를 보면 9위다. 이것도 대단한 것이다. 한국은 부인할 수 없는 스포츠 강국 또는 올림픽 강국이다.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1백여 년 전 올림픽이 뭔지도 몰랐던 나라, 1948년 정부수립이 되던 해 런던올림픽에 무명의 신생독립 국가로 출전해서 겨우 동메달 2개를 땄던 한국이 이렇게 커지고 강해졌다.
총 메달을 기준으로 한 올림픽 종합순위 10위권에 오른 국가를 보면 모두 하드파워, 즉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종합적 국력이 강한 나라들이다. 호주와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국가들이다. 1948년 이래 우리나라의 메달획득 과정을 보면 국력의 신장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포츠를 잘해서 국력이 강해진 것이 아니라 국력이 강해지면서 스포츠도 강해진 셈이다.
올림픽 종목의 원초적 본성은 전쟁에 있었다. 전쟁 중에도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4년에 한 번씩 전투를 중지하고 올림피아에 모여 전쟁용 기술을 뽐내며 경기를 했다. 즉 잠시나마 올림픽 경기를 통해 평화를 지향했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은 젊은 날 교육철학자로서 조국 프랑스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보불전쟁에서 비스마르크의 리더십을 업은 독일에 무참히 패한 프랑스, 그 패인이 프랑스 청소년의 나약한 체력이라고 생각했다. 쿠베르탱 남작은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을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고취시키고 싶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지방마다 올림픽이라는 이름의 경기가 다수 있었고, 쿠베르탱은 청소년 체육교육의 모델을 영국의 학교체육에서 찾게 되었다.
쿠베르탱 남작이 진정한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주의적 편견을 극복하고 영국 그리스 미국 등을 돌아다니며 정치력을 발휘하여 국제 올림픽운동으로 승화시켰다는 데 있다. 그렇지만 쿠베르탱 남작도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독일이 올림픽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게 노력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쿠베르탱이 제2대 IOC위원장으로 재직할 때만 해도 올림픽 경기는 만국박람회에 밀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제 올림픽은 전 세계 젊은이들의 꿈이고 인류 최고의 제전이 되었다. 올림픽은 성장과 함께 정치와 체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진화를 거듭해 왔다.
2012 런던올림픽을 통해 한국은 올림픽의 중심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금메달도 많이 획득했고 종목도 다양해졌다. 또한 올림픽을 훌륭히 개최하는 나라가 되었다. 일본보다 약 20년 늦게 중국보다 20년 앞서 하계 올림픽을 개최했고, 2018년 동계 올림픽도 개최한다. 지금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한 세대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세기 말 쿠베르탱 남작의 아이디어가 100년 후 70억 인류를 하나로 묶는 올림픽 운동이 될 줄을 누가 예측했겠는가. 올림픽 운동의 이상은 누군가에 의해 잘 관리되고 진화해야 한다. 그 누군가 중에 대한민국도 서 있어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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