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관련

다음의 제주 실험

구상낭 2022. 11. 10. 12:56

기고(제주도 지역 기관) 2012-05-16 11:45:15

 

[DAUM의 유쾌한 제주 실험]

디지털 시대 지방의 가능성에 주목하라

전문가 기고/ IT 혁명과 신산업 입지론

8년 전 첨단 인터넷 포털 기업 다음커뮤니케이션(이하 다음)이 제주 섬에 존재해야 할 이유에 공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도권이 아니면 큰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선입견이 뿌리박고 있는 게 한국 기업의 생태 환경이다. 다음의 본사 제주 이전은 8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실행된 일이지만 현시점에서 볼 때도 하나의 사건이다. 그 시사점은 무엇일까. 서울의 비대화와 지방의 공동화를 치유해 줄 수 있는 단초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까.

해발 500m의 한라산 중턱에 잡은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그곳에 제주도의 오름을 닮은 짙은 갈색 빌딩이 나직하게 서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본사 사옥 ‘스페이스닷원(Space.1)’이다. 작명에 신경을 꽤 쓴 듯 이름만 듣고도 하이테크·과학·미래의 공간을 연상하게 된다.

다음이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해 제주대와 손잡고 개설한 다음 트랙 수업 장면.

실리콘밸리형 기업 문화 확산

이 빌딩 입구에 현무암으로 조각한 돌하르방 상이 있다. 그런데 스페이스닷원 앞에 선 돌하르방은 전통적인 돌하르방과 다르다. 무릎 위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골똘히 키보드를 만지고 있다. e메일을 통해 지역사회의 민원을 들어주는 ‘인터넷 하는 돌하르방’이다. 첨단과 전통의 배합 또는 서울 기업과 지방의 결합을 상징한다.

스페이스닷원이나 ‘인터넷 하는 돌하르방’은 제주도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지난 8년간 고심해 온 다음이 만들어 낸 아이콘이자 스토리텔링이다. 구경꾼들에겐 재미있는 이야기쯤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기업 내부적으로는 즐거운 실험과 도전뿐만 아니라 갈등과 고뇌가 배어 있는 상징물들이다.

다음은 재벌의 DNA를 전혀 수혈하지 않고 단시간에 기업 브랜드 가치를 올려놓은 토종 포털 기업이다. 그 창업자들은 1990년대 정보기술(IT) 혁명의 격랑을 타고 출현한 벤처 기업가들로 소위 ‘굴뚝산업’ 세대와는 다른 마인드와 행동 패턴을 갖고 있다. 하드웨어를 다루는 전통 재벌 기업과 달리 이들은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실리콘밸리형 기업 문화의 세계관과 감각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창업자들에게 서울은 주거비가 많이 들고 그들 앞에 펼쳐질 삶의 질이 별로 쾌적한 곳으로 비쳐지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모든 것을 처리하는 디지털 시대에 사무실이 꼭 서울에 있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예를 들면 독일 최대 미디어 그룹 베텔스만의 본사는 인구 10만 명의 소도시 귀터슬로에 있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한다. 미국 등지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산업 입지론이 새로이 대두되고 있다. 자연환경이 쾌적하고 좋은 교육기관, 의료 시설, 문화 시설이 있고 세계 어디와도 쉽게 연결되는 곳이라면 그곳이 비록 중소도시일지라도 지식 노동자들이 창의적으로 일하며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이런 디지털 산업 입지 변화의 맥을 읽고 일찍 눈뜬 사람이 다음의 이재웅 창업자였다. 미래의 지식 노동자의 취향을 앞서 읽은 그였기에 ‘또라이짓’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가며 본사 제주 이전을 강력히 밀고 나갔고 이제 절반의 성공을 이룩했다.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을 불문하고 21세기에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는 이슈가 양극화 문제이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에겐 다른 나라보다 더 심각한 양극화 요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서울과 지방의 격차 문제다. 이호철의 1967년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에서 묘사됐듯이 지난 반세기 동안 서울은 지방의 모든 인적자원을 빨아들였다. 300만 서울 인구가 1000만 명으로 늘었고 서울에서 넘쳐난 인구가 외곽으로 흘러들어 수도권이란 이름 아래 2500만 명이 몰려 산다.

권력·부와 같은 하드 파워는 물론이고 교육·문화·지식·정보와 같은 소프트 파워가 수도권으로 모조리 흡수된 반면 나름대로의 부와 문화를 갖고 있던 지방은 모든 것을 상실했다. 지방은 오염을 배출하는 생산 공장만 들어설 뿐 전문직 고급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 한때 좋았던 지방대는 실업자를 양산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부산을 가리켜 ‘한국 제2의 도시’가 아니라 ‘한국 제일의 시골’이라고 자조하게 되지 않는가.

그렇다고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수도권이 살맛나는 곳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소득 격차와 집값 폭등으로 삶은 팍팍해지고 도시 환경은 삶의 질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수도권의 이상 비대화를 안은 채 다가오는 고령사회와 ‘2040 실업사회’를 맞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물론 기업들은 수도권의 인력(引力)에서 탈출하기를 두려워한다. 국가 공기업이 지방에 본사를 두기도 하지만 이는 거의 정책적 강제성에 의해서다.

다음의 행동이 놀라운 이유는 여기에 도전, 업계에서 가장 변방으로 인식되는 제주 섬으로 본사를 옮겼다는 사실이다. 서울은 지식과 정보가 집중돼 있는 곳이며 제주도는 그 반대다. 다음은 어떤 업종보다 태생지인 서울 강남에서 지식과 정보를 흡수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대안으로 제주를 선택했다. 이것은 창업자들의 세계관과 기업관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원들이 쾌적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제주도의 공간적 위치가 국제 교류의 장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기업 문화와 IT 혁명이 몰고 온 산업 입지의 변화가 한 기업의 지방 이전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다음의 제주 이전으로 지방은 얻는 게 무엇일까. 한국의 고질병인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에 하나의 숨구멍을 터줬다는 측면에서 시사점은 크다.

2011년 다음의 매출액은 4200억 원이 넘었다. 서울에서 이런 규모 기업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그러나 인구 50여만 명의 제주도에서 지역총생산(GRDP)에 기여하는 몫은 4%가 넘는다. 더 피부에 와 닿는 경제 효과는 일자리 창출이다. 다음은 엔지니어와 미디어 분야 등에 전문 인력 350명을 제주에 상주시키고 있다. 대부분 서울에서 공채로 뽑은 사람들로 제주 현지에서 공급할 수 없는 인력이다. 그러나 콘텐츠 이용자 댓글 등을 관리하기 위해 자회사 다음서비스를 만들어 400여 명의 현지 대졸자를 고용하고 있다. 모두 750명의 디지털 산업 일자리가 창출된 것이다. 아직까지 어떤 재벌 기업도 제주도에 이런 규모의 일자리를 창출한 적이 없다. 기업의 본사 효과를 증명해 보이는 실례다.

 

2006년 제주시 오등동에 문을 연 다음의 제주글로벌미디어센터.


삶과 일의 균형 추구하는 2040세대

제2차 파급효과는 제주 지역의 산업과 교육 분야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는 고용 효과가 높은 기업 유치에 목말라 왔으며 첨단과학기술단지를 조성해 하이테크 산업 유치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러나 다음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평가받으면서 디지털 분야 기업과 기업 연구·개발(R&D)센터가 속속 이 단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다음이 클러스터를 유발하는 촉매가 되는 셈이다. 또한 디지털 산업은 대학과의 연계가 필수불가결하다. 이미 다음은 제주대를 비롯한 도내 대학에 산학 연계 강좌를 개설, 미래의 인재 및 디지털 인력을 교육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 본사 이전은 대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아직도 숙제는 많다. 다음은 서울을 버릴 수 없는 미디어 산업이다. 제주 본사 규모보다 더 큰 서울 사무소가 필요하다. 비용 측면에서 큰 장애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밖에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에 접근하기 위한 불편함도 큰 장애 요인으로 꼽힌다.

지역에서도 풀어야 할 숙제는 무겁다. 다음은 제주 섬의 미래 가치와 잠재력을 보고 투자했다. 고급 디지털 인력이 원하는 생활환경 조성도 아직 더디다. 의료 시설, 문화 시설, 쇼핑과 음식 문화의 다양성, 대중교통 시설이 빈약하다. 관광객은 하루 이틀 여행하며 현재의 제주 문화를 즐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주민으로 살아야 할 하이테크 인력은 제주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자녀의 고향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생활 시설과 문화는 관광객이 원하는 것과 다르다.

제주도가 기업을 유치하는 데 가장 큰 난점은 우수한 인력을 공급할 수 있는 인적자원이 빈약한 점이다. 산업이 기업이 요구하는 인력을 지방에서 길러 내는 대학 교육은 지역사회와 기업 모두에게 절실한 과제다. 스탠퍼드와 버클리의 창의적 인재가 실리콘밸리의 발전에 기여한 바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제주도는 그런 대학이 아직 없다. 주요 인력을 모두 서울에서 선발해 제주에 근무하게 하는 것은 기업엔 비효율적이고 지역사회엔 자존심의 문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대학이 지역 인재를 키우는 역할에서 국가 또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역 활성화를 추구하는 지방은 산업 입지의 변화를 감지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산업을 이끌어 나갈 2040세대가 생각하는 삶과 일의 방식에 맞는 정주 환경을 조성하느냐가 지방의 희망과 연결돼 있다. 노동자가 기업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노동자들이 좋아할 곳으로 기업 본사나 R&D센터를 옮기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한경비즈니스 5월 16일자
김수종 자유칼럼 공동대표,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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