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01일 (화) 02:52:35
최순실 사태로 대통령의 권력행사 행태가 최대 관심사가 된 요즘입니다만, 오늘은 말머리를 돌려 필리핀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두테르테는 지난 6월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면서 마약 중독자 및 거래자를 처단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대통령이 되자 그는 마약 소탕작전을 벌였고, 경찰은 이 작전에서 마약중독자와 거래자 1,400명을 쏴 죽였습니다. 국제사회로부터 인권 유린이라는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두테르테는 자신을 히틀러에 비유하면서 독재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막말을 쏟아내어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립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창녀의 아들’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호주의 수녀 강간 살해 사건을 보고 “그 수녀 예쁘다.”고 말하는 등 여성비하 발언도 쉽게 쏟아냈습니다. 두테르테는 인권유린을 문제 삼는 유엔과 유럽연합(EU)은 물론 교황도 비난했습니다. 인구의 80%가 천주교 신자인 나라 대통령이 거리낌 없이 교황을 욕할 정도로 입이 거칩니다.
그럼에도 두테르테 대통령은 여론조사에서 85% 내외의 견고한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돌출 행동은 대외 관계에서도 예외없이 발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0월 2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시진핑과 만나면서 두테르테는 껌을 씹어 언론의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두테르테는 이런 결례를 뛰어넘는 립서비스로 중국을 기분 좋게 했습니다. 필리핀과 중국의 분쟁 현안인 스프래틀리군도 영유권 문제는 회담 의제에서 빼버렸습니다. 그리고 경제협력포럼에 참석해서 “미국은 실패했다. 미국과 결별을 선언한다.”고 연설해서 미국 조야를 당혹케 했습니다. 중국은 대가로 135억 달러의 경제협력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두테르테는 중국에서 돌아오자 말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미국과의 결별 발언에 대해서는 외교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부연설명하며 “왜냐하면 미국에 사는 필리핀 사람들이 나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능청을 떨었습니다. 사실 미국에는 필리핀계 사람들이 약 400만 명이 살고 있고 이들이 송금한 달러가 필리핀 경제의 한 축을 지탱해줍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줄타기 외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27일 일본을 방문해서 아베총리와 정상회담을 끝낸 후 공동발표에서는 “일본과 필리핀은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하여 ‘법의 지배’가 더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미국과의 결별 선언에 대해 “미국이 나를 비판하니까 말대답한 것으로 필리핀 정부와 관계없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사는 필리핀인 모임에선 “미국은 바보.”라고 평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필리핀을 가장 많이 도와주는 나라”라고 칭찬했습니다. 두테르테는 일본으로부터 약 550억 원의 농업차관을 받아냈습니다.
두테르테는 중국이 듣고 싶은 말 ‘미국과의 거리 두기’와 일본이 듣고 싶은 말 ‘남중국해 국제재판판결 존중’을 들려주고 경제협력이라는 실익을 챙겼습니다. 미국이 대통령 선거로 외교의 준 공백상태에 있는 시점을 이용하여 두테르테는 중국과 일본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동아시아에서 미국과의 거리를 두려는 두테르테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날로 강대해지는 중국은 미국과의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세계 전략의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미국의 세계 전략은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정책으로 서태평양에서의 패권을 유지하려 합니다. 군사 전략적으로 볼 때 필리핀은 미국이나 중국에게 절대적으로 긴요합니다.
필리핀은 면적이 30만㎢, 인구가 1억 명으로 체격이 거의 일본 규모입니다.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필리핀 군도가 갖는 전략적 가치입니다.
동아시아 지도를 펴놓고 보면, 필리핀은 서태평양 중국의 코앞에 마치 그물을 뿌려놓은 듯이 많은 섬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필리핀 군도는 일본 열도와 함께 양팔을 벌리듯이 중국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필리핀을 동맹관계로 묶어 놓으면 일본열도와 더불어 중국을 대륙세력으로 포위하면서 태평양을 내해처럼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남중국해를 통제하면 중국을 가둘 수 있습니다. 반면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필리핀은 태평양 진출을 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언젠가 필리핀이 중국 편에 선다면 중국은 태평양으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남중국해 영유권은 말라카해협을 통해 동아시아 각국으로 연결되는 해로를 통제할 수 있는 전략 요충지라는 점에서 양보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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