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6-03-16 22:03:29
우리는 이메일 시대에 살고 있다. 종이 편지에 우표를 붙이고 보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의 등록 이메일 계정은 약 43억5천만 개다. 이 계정 사이에 오가는 이메일 숫자는 하루 20억 통이 넘는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그러니까 1994년의 일이다. 필자가 신문사 뉴욕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실리콘밸리로 취재여행을 간 적이 있다. 동영상은 물론 컬러 화면도 구동되지 않던 486컴퓨터 시대였다. 그 당시 펜티엄(Pentium)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출시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텔의 앤디 그로브 사장과 인터뷰하기로 되어 있었다.
인터뷰에 앞서 여비서의 안내를 받았다. 그녀가 건네준 명함을 들여다보는 순간 주소와 사무실 전화번호 밑에 익숙하지 않는 이탤릭체 글이 한 줄 더 붙어 있었다. @기호가 중간에 끼어있는 것이 왠지 신경에 거슬렸다. 인터뷰 통역을 하게 된 한국인 엔지니어의 명함도 그랬고, 나중에 만난 앤디 그로브 사장의 명함도 마찬가지였다.
그로브 사장과 인터뷰를 끝내고 통역을 맡았던 한국인 엔지니어와 커피타임을 가졌다. 그는 한국의 유명 대학 전자공학과를 나온 후 삼성전자에 근무하다가 인텔로 스카우트된 30대 중반의 젊은 사람이었다.
내가 그에게 받은 명함을 꺼내 테이블에 펴놓으며 물었다. “주소도 아니고 전화번호도 아닌 이게 뭡니까? 이 기호(@)는 별로 본 적이 없는데 뭐라고 읽는가요?”
그 엔지니어가 대답했다. “아, 그게 이메일 어드레스(주소)라는 겁니다. @기호는 타이프라이터 자판에 있는 회계용(會計用) 가격 기호인데, 이메일 주소를 고안한 사람이 갖다 붙였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at'(애트)라고 읽습니다.”
개념을 이해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이메일 주소는 뭐하는 겁니까?”
그 엔지니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메일주소는 컴퓨터와 컴퓨터끼리 통신할 때 사용됩니다. 엔지니어들이 통신하며 쓰는 것이니 기자님은 별로 아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처음 접했던 에피소드다. 뉴욕에 돌아가 한 달 이상 취재활동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때까지 뉴욕에서는 @가 들어간 이메일 주소가 쓰인 명함을 별로 보지 못했다. 1년 후 나는 명함에는 기재하지 않았지만 이메일 주소를 갖게 되었다.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이메일은 20세기를 풍미했던 편지 문화를 도태시켜버렸다. 통계에 의하면 1996년에 이미 미국에서 이메일 통신이 우편 메일 숫자를 능가했다.
며칠 전 국내 신문에 보도된 한 미국인의 부음이 눈길을 끌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영미권 국가의 신문에서는 이 부음이 아주 크게 보도되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은 레이몬드 톰린슨(74), 바로 이메일 고안자로 기호 @를 전 세계인이 쓰도록 만든 사람이다.
톰린슨은 뉴욕 주의 시골 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초기 인터넷의 전신(前身)인 아르파넷(Arpanet) 개발에 참여했다. 그는 1971년 처음으로 이메일 통신을 고안했고 스스로 첫 이메일을 보냈던 사람이다.
그는 이메일 주소를 만들면서 사용자 이름(user's name)과 고유명(host name)을 구분하는 기호로 @을 채용했다. 그는 키보드에서 회계용으로 가끔 쓰일까말까한 기호라는데 착안하여 이메일 주소 표기에 @를 도입했다. 톰린슨의 아이디어로 컴퓨터 시대에 거의 사라질 뻔한 @가 지금은 지구촌 거의 모든 사람에게 가장 친숙한 기호가 되었다.
인터넷 혁명으로 이메일이 인류에 기여한 바는 말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정보의 양, 속도, 비용에서 우편 및 전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한 세대에 걸쳐 번창하던 이메일 통신도 큰 변화를 맞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일어난 두드러진 변화는 대학생들이 이메일 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추세다.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하면서 소통하고 정보를 주고받아 버린다. 이런 경향은 기성세대에게도 전파되고 있다.
인간에게 순간순간 한없이 편한 방향으로 정보통신기술(IT)이 진화하고 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로 인공지능(IT)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다보스포럼의 창설자 클라우스 슈바브는 지난 1월 인공지능과 로봇, 사물인터넷, 생명공학, 자율주행차, 양자컴퓨터가 결합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C, 인터넷, 이메일도 어느새 과거의 낡은 언어가 되었다. 기술에서 완결판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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