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2015-12-01 09:27:32
“과학은 명료합니다.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2도 이하로 제한하려면 더 앞서나가고 더 빨리 행동해야 합니다. 단 2도 상승해도 식량 및 수자원 안보, 경제의 안정 그리고 국제 평화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것입니다. 튼튼한 기후체제를 만듭시다. 파리(총회)가 그 전환점을 찍어야 합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연설이다. 청중은 버락 오바마, 시진핑, 블라디미르 푸틴, 신조 아베, 앙겔라 메르켈, 마헨드라 모디, 프랑수와 올랑드, 데이비드 카메론 등 전 세계에서 모여든 150명의 대통령 또는 총리들이었다. 어제 파리 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개막식 광경이다.
개막 연설이 끝나자 각국 정상들이 차례로 연단에 올라갔다. 연설 시간은 5분 내외로 짧았다. 정상들은 자국의 처한 경제적 입장에 따라 뉘앙스가 조금씩 달랐지만 하나같이 기후변화의 위험을 경고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외쳤다.
파리는 보름 전 IS 테러리스트들이 129명의 시민과 관광객을 쏘아 죽이던 광란의 도시다. 웬만하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을 법한 행사, 그것도 경호에 손톱만큼의 실수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기라성 같은 정치 지도자들이 한꺼번에 150명 이상 파리에 모여들었으니 세기적 사건임이 분명하다. 기후변화는 어제 정상회의를 계기로 국제 사회의 최고 정치의제(議題)로 선포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쟁이나 테러 또는 금융위기 같은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면 기후변화는 우리 일상을 점점 지배해갈 것이다.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뭄, 바다수위 상승, 남북극과 히말라야 빙하의 해빙, 뉴욕타임스의 비유처럼 뜨거운 가마솥으로 변해가는 태평양이 그렇고, 수치적으로도 20세기 평균 기온보다 올해 평균 기온이 섭씨 0.86도 상승했다.
파리 당사국 총회는 온실가스 감축 합의를 이루기 위해 반기문 총장이 언급한 바와 같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보다 섭씨 2도 이상 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섭씨 2도의 근거는 만약 기온이 그 이상 오르면 기후변화가 인간이 통제를 벗어나는 재앙이 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예측에 의한 것이다. 이런 대전제에서 파리 당사국총회는 160여 개국의 이미 제출한 개별국가의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토대로 ‘파리의정서’같은 합의를 이끌어내려하고 있다.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작년 온실가스감축에 합의함으로써 파리당사국총회 협상 전망은 밝은 편이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는 정상회의 연설을 통해 온실가스 37%감축안을 공표하고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한국의 역할을 제시했다. 교토의정서 체결 당시 한국은 개도국의 지위를 유지하여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짊어지지 않았으나 지금은 세계 8대 온실가스배출국으로 국제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전력생산의 70%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버거운 짐임이 분명하다. 감축 노력을 하지 않고 갈 때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00으로 가정하면 앞으로 15년 후 63으로 줄여야 한다. 산업계는 수심이 가득하다. 박근혜 정부는 에너지 신산업 정책을 통해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다.그러나 이런 구상이 아직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있다.
파리 당사국총회가 끝나면 기후변화 이슈는 세계 각국의 국내정치의 주요 의제로 떠오를 것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온실가스 감축이 발등의 불이 될 것이다. 정치적 논쟁도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미래 세대를 위해 남은 임기동안 기후변화 대응 체제의 기초를 어떻게 닦아 놓을 것이며,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여의도 정치권은 아직 기후변화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파리 총회가 열리기 일주일 전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안희정 충청남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서울 프레스센터에 모여 '에너지 전환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의 핵심 내용은 에너지수요 관리와 신재생에너지 생산이다. 이들은 선언의 배경으로 파리기후변화총회 이후 전개될 ‘신기후체제’에 대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이 모두 예비 대권주자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또한 온실가스 감축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하는 아래로부터의 방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온실가스감축은 에너지 산업 문제와 결부되어 있어 이해관계가 단순치 않다. 모든 사안이 정치권에 들어가면 갈등으로 번지는 한국 정치에서 기후변화가 또 한 번 파당정치의 소재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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