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관련 2014-11-04 15:12:24
스마트폰 하나만 들면 세계 어디서든 원하는 업무를 거의 다 수행할 수 있는 세상이다. 머지않아 시계나 반지만 끼고 다녀도 결제가 가능하고 신분 확인이 저절로 되는 웨어러블(wearable)시대가 다가온다. 정보화 사회는 이렇게 공간의 장벽을 급속히 허물어가고 있다.
이 정보화 시대의 기류를 타고 제주도가 하이테크 산업의 둥지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0년 간 정보통신기술(IT), 생명기술(BT), 환경기술(ET) 등 소위 첨단기술 분야 기업 50여 개가 본사 또는 연구소 등을 제주로 이전했다. 이들 중에는 한국의 대표적 인터넷포털 다음커뮤니케이션과 게임 지주회사 넥슨홀딩스 등 굵직한 기업이 제주로 본사를 이전하고 ‘새끼 기업’까지 낳았다. 이로 인한 일자리 창출 효과로 도내 고학력 인력의 취업길이 넓어졌고, 많은 R&D 인력이 수도권으로부터 이주해 오면서 제주 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지가 바로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다.
10년 전 이곳은 가을이면 억새가 춤을 추는 목장지대였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제주 이전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2008년 여름 지금 '스페이스1' 빌딩 근처에 섰던 기억이 새롭다. 간선도로만 겨우 포장되고 초보적인 구획정리만 된 상태여서 그야말로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불과 10년 만에 억새밭이 첨단산업 지역으로 변했으니 상전벽해를 보는 기분이다. 농업 사회와 산업 사회에서 푸대접받던 제주도가 정보화 사회에서 그 가치의 상승을 누리게 된 셈이다.
과거 산업사회에서 기업은 방대한 기계설비가 들어갈 넓은 공장부지와 수많은 노동력을 공급해주는 대도시가 필요했다. 그러나 IT와 BT 등 첨단 산업은 입지 조건이 달라졌다. 정보사회의 R&D형 기업이 원하는 고급 두뇌 인력은 지적인 재충전이 쉬우며 쾌적한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선호하고 기업들은 이런 곳으로 이주하는 게 선진국 추세다. 제주도가 탈도시화를 꿈꾸는 지식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싶어 하는 '이상향'으로 부각되면서 이런 선진국 추세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물류의 이동이 중요했다면, 정보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의 창조, 가공, 유통이 중요해졌다. 두뇌 인력이 좋아하는 곳이 바로 기업이 원하는 창의적 입지환경이다. 제품의 이동은 인터넷, 스마트폰, 택배 등 정보통신기술과 혁신적인 물류기술의 발달로 문제가 없어졌다. 아름답고 쾌적한 자연환경을 가진 중소도시이면서 세계 어디로든 접근이 용이하고, 문화 및 스포츠 생활이 가능하고, 선진 교육시설과 의료시설이 갖춰진 곳이라면 현대판 디지털 유목민으로 불리는 지식 노동자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곳이다.
제주로 IT기업이 이주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오염된 공기, 교통지옥, 치솟는 주택비용, 자녀교육 등 수도권의 스트레스를 벗어나 쾌적한 환경 속에서 가족과 즐기며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IT 등 첨단기술 산업을 유치하는 것은 모든 나라, 모든 도시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한국 안에서도 지역 간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보조금과 면세 등 온갖 정책적 유인정책을 동원한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를 결정하는 요인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이곳으로 이전한 기업들은 제주도가 실리콘밸리처럼 머지않아 첨단산업의 메카로 떠오를 것이라는 기대감과 예측을 갖고 제주행을 결행했을 것이다.
제주도에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의 어느 지역도 갖추기 힘든 매력 3가지가 있다. 첫째 세계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등 소위 유네스코3관왕이 됨으로써 천혜의 자연환경인 제주 섬은 거주지와 비즈니스 기지로서 더할 나위 없는 가치를 지닌다. 둘째 동중국해의 북단, 즉 한반도, 중국대륙, 일본열도의 중간에 위치함으로써 국제적 위상과 전략적 가치가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셋째 중국 시대의 도래로 21세기 내내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비즈니스의 기회가 생길 것이다.
제주도는 섬의 특성이나 미래 가치의 차원에서 볼 때 자연을 보전할 수 없는 산업은 정책적으로 배제시켜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IT, BT, ET, 하이디자인 등 R&D형 첨단산업으로 가야 한다.
제주가 실리콘밸리의 꿈을 실현하려면 아직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제주의 첨단산업 기반은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세다. 제주의 IT기업들은 수도권의 테헤란로, 판교, 구로공단의 산업 응집력에 대적하기가 어려운 외로운 벤처들이다. 제주의 구심력을 키우려면 더 많은 국내기업은 물로 외국의 IT기업들이 기업 활동을 활발히 해야 하고, 외국의 창의적 젊은이들이 공부하고 취업하고 창업하는 곳이어야 한다. 특히 중국, 인도, 베트남, 몽골, 필리핀의 대학생들이 공부하고 일하고 지식과 정보를 교류하는 곳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열쇠는 대학이라고 본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와 보스턴의 ‘루트128’의 성장배경에는 스탠포드, UC버클리, 하버드, MIT 등 유수한 대학들이 전 세계의 우수한 유학생들을 수용하는 다양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실리콘밸리 꿈을 실현하는 데 관건은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등 소위 STEM 분야의 젊은 인재를 길러내는 국제성을 띤 대학 교육이다. 이를 위해 제주도 발전의 열쇠를 쥔 주체들, 즉 JDC와 제주도가 선견지명의 안목과 조율된 노력으로 대담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아울러 JDC와 제주대에 단기적으로 권하고 싶은 처방이 있다. 서로 이웃해 있는 첨단과학기술단지와 제주대 사이에 놓인 ‘보이는 담과 보이지 않는 담’을 대범하게 허는 고민과 결단을 기대하고 싶다.
<제주의 꿈, JDC MAGAZINE(10, 2014 VOL.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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