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해 쟁탈전의 아이러니
내일신문 2012-10-15 20:46:04
한국 면적보다 140배나 넓은 바다, 그러나 연중 절반이 어둠과 얼음 속에 덮여 있어 일부 탐험가와 과학자를 제외하면 문명 세계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곳이 북극해다. 이 북극해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그린란드는 한국 면적의 20배가 넘는 세계 최대의 섬이다. 이 섬 역시 80% 이상이 두꺼운 얼음 밑에 있고 춥고 어두운 겨울이 6개월이나 지속되는 곳이어서 사람들로부터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 북극해와 그린란드가 문명 세계의 관심 대상으로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북극해를 덮고 있는 얼음과, 그린란드를 덮고 있는 빙하가 급속히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해의 얼음이 줄어들면서 관심이 고조되는 분야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북극 항로다. 유럽연합과 북미지역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 한국 등 주요 생산국과 소비국이 북극해 항로를 이용할 경우 물류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북극해 항로 개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둘째 북극해와 그린란드의 자원쟁탈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의 20%가 북극 지역에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빙하가 후퇴하면서 그린란드의 광물자원이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 미사일이나 정밀 전자제품에 필수적인 희토류가 그린란드에 많이 매장된 것이 확인되면서 제조업 국가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빙하가 후퇴하면 광상에 접근하기 쉬워지고 바다 얼음이 줄어들면 수송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그 동안 북극해는 조용했다. 북극해를 규제하는 것은 국제해양법이고, 이에 따라 배타적 관할권을 가진 나라는 러시아,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아이슬란드, 덴마크(그린란드), 캐나다, 미국 등 8개국이다. 이들 8개국은 북극협의회(Arctic Council)를 결성하여 느슨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북극해 지역이 항로와 자원의 보고로 조명을 받게 되자 업저버로 끼워달라는 나라가 늘면서 북극협의회의 위상이 확 높아졌다.
한국도 북극협의회 업저버국 신청
북극해 진출 경쟁에 불을 지른 것은 중국이다. 지리적 연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중국은 그동안 소외되어 있었고, 사실상 북극해 지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와 러시아가 각종 군사전략적 요충지로 모든 활동을 선점한 상태다. 그러나 중국은 신장된 경제력을 등에 업고 북극해에 대한 영향력 확보는 외교적 공세로, 그린란드 개발에는 경제력을 동원하고 있다.
중국의 외교적 목표는 북극협의회의 업저버국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최근 아이슬란드를 방문해 각종 경제협력공약을 미끼로 구애작전을 펼쳤고, 중국 고위층들이 그린란드를 방문하고 광산에 집중적인 투자를 함으로써 경제적 교두보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외교적 관할권을 가진 덴마크에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히려 중국의 이러한 공세에 놀란 유럽연합이 대표를 파견하여 희토류 개발권을 중국에 독점적으로 주지 말 것을 사정하는 판국이 되었다. 인구 6만 명도 안 되는 그린란드는 그 동안 누구의 관심도 못 받다가 갑자기 강대국들의 추파에 어깨에 으쓱해진 셈이다.
지난 9월 이명박 대통령의 그린란드를 방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볼 만하다. 한국도 북극해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북극항로는 수출길이고, 그린란드의 희토류는 한국의 전자정밀산업에 필요한 자원이다. 북극협의회의 업저버국으로 신청해 놓은 상태다.
수천만 년 전부터 북극해는 얼음의 바다였고, 그린란드는 빙하의 땅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온실기체가 대기에 축적되면서 지구 평균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지구온난화가 두드러지게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 바로 북극해다.
8년 뒤 여름엔 북극해 얼음 사라질듯
북극해는 겨울 동안 거의 얼음으로 덮여 있지만 9월 중순이 되면 얼음 면적이 최소로 줄어든다. 30여 년 전 위성을 통해 측정했을 때 9월 얼음면적은 700만 평방킬로미터였으나 지난 9월 16일 미국 위성이 측정한 얼음 면적은 341만 평방킬로미터로 30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런 추세로 가면 2020년 9월에는 북극해의 얼음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북극해와 그린란드의 급속한 해빙(解氷)은 지구과학자들의 눈에는 기후 재앙의 서곡이다. 반면 국가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경제활동의 호기로 비치고 있다.
둘 다 틀린 시각은 아닌 듯싶고, 미래를 바라보는 시차(時差)의 문제인 것 같다. 북극해의 해빙과 자원쟁탈전은 문명의 역설 같다. 침몰하는 배 갑판에서 보석을 발견하고 다투는 선원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