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잡아먹어야 할 존재인가
내일신문 2012-07-23 15:08:14
1993년 호주 출신 영화감독 사이먼 윈서가 만든 ‘프리 윌리’(Free Willy)는 당시 전 세계 영화팬들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던 가족 영화다. 마이클 잭슨의 주제곡만 들어도 가출 소년과 말썽꾸러기 범고래(Killer Whale)의 우정이 깊어가는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다.
인간이 고래를 포유동물로 알게 된 것은 오래 됐지만, 20세기 들어서도 물고기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수산자원으로서의 가치만 인정해왔을 뿐이다. 결국 남획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고래잡이에 대한 반성이 일었고, 그 후 과학적 탐구가 이뤄지면서 고래가 고도의 지능과 함께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현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상업적인 고래잡이(捕鯨)를 규제하기 위한 국제적 움직임은 2차 대전 직후인 1946년 ‘국제포경규제협약에 대한 의정서’가 채택되고, 여기에 근거하여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설립되면서 시작됐다. 그 후 남획에 의해 고래의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자 국제포경위원회는 1986년 밍크고래를 비롯한 12가지 종류의 고래에 대한 포경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포경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국제포경위원회는 고래잡이를 생업으로 삼는 소수민족의 고래잡이만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그러나 아이슬랜드와 노르웨이는 IWC 가맹국이지만 상업적 고래잡이를 계속하고 있으며, 일본은 연구목적을 내세워 남빙양 등에서 고래를 잡아 국내서 상업적 유통을 허용한다. 그래서 이들 국가는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제포경규제협약은 강제조항이 없으니 가맹국이 고래를 잡은들 말릴 방법은 없다. 하지만 미국, 유럽연합, 호주, 캐나다 등 세계 여론을 주도하는 국가들이 포경 반대 진영이 되어 가맹국이 고래를 잡겠다면 벌떼같이 들고 일어선다.
그런데 지난 4일 파나마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에서 한국이 비난대상으로 떠올랐다. 한국 대표가 ‘과학포경’ 계획을 공식 천명했기 때문이다. 비난은 나라 밖에서만 아니라 국내 환경단체 등으로부터도 나왔다.
정부의 과학포경 주장의 근거는 어족자원보호라고 한다. 한국 근해를 배회하는 고래 개체수가 1986년 포경금지 조치 이전으로 회복되면서 다른 어족자원을 너무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생업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어민들의 불만에 근거하여 고래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연간 일정수의 고래를 포획하겠다는 것이다.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국제적 논란이 되고 있는 고래의 먹이 섭취량을 정확히 조사하기 위해 고래를 잡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논쟁의 본질을 놓고 보면 식용자원으로 고래를 먹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언론보도를 보면 정부에서 과학포경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언젠가 국제포경위원회가 상업포경을 허용했을 때를 위한 데이터를 축적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고래 연구의 역사가 깊다. 그런데 미국이 주장하는 먹이섭취량은 체중의 1%이고 일본의 주장은 5%이다. 고래를 먹지 말자는 나라와 먹자는 나라의 수치가 다른 것은 그 속셈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는 고래 고기를 식용자원으로 활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여러모로 볼 때 일본을 따르는 것 같다. 포경계획을 세운 이면에는 고래 고기가 사실상 상업적으로 유통되는 지역적 현실이 버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굳이 울산의 선사시대 암각화를 떠올리지 않더라고 구룡포와 장생포 일대는 100년 이상의 포경역사를 갖고 있고, 현재도 고래 고기가 그곳의 향토음식으로 유통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고래고기’를 치면 블로그나 광고를 통해 유통과 판매 및 식당에 대한 어마어마한 정보가 쏟아진다. 불포화지방산, 콜레스트롤개선, DHA풍부, 혈액순환촉진, 암과 성인병 예방, 남성스태미너강화, 여성미용 등은 고래 집에 붙은 선전벽보의 주 내용을 이룬다. 고래 고기를 취급하는 음식점이 울산에만 70곳 정도가 될 정도라고 한다. 공식적인 포경금지 국가의 현실이다.
울산 일대에선 그물에 걸려 유통되는 밍크고래를 ‘바다의 로또’라고 한다. 한 마리 건져 올리면 수천만 원을 호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니 뱃사람의 마음엔 정말 로또를 사는 마음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가 굳이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며 포경을 장려할 순수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주민의 생계와 관련한 요구가 확산되면 팔이 굽게 마련이다.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며 한국이 상업적 포경과 고래 고기 유통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지 정부는 이 시점에서 본질적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동해에서 그물에 걸리는 밍크고래는 개체수가 전 세계적으로 75만 마리로 고래치고는 비교적 많은 편이다. 하지만 지표면의 75%를 차지한 드넓은 바다에 그만한 숫자가 70억 인구와 비교할 때 과연 많은 것인가. 고래가 코끼리와 함께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높은 지능을 가진 영물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먹이가 아니라 친구로 국민감정을 유도해야 하지 않을까. 2009년에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포경반대 의견이 68%, 찬성의견이 15%였다는 사실이 정부의 포경정책에 좋은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