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그룹

88세 칼럼니스트

구상낭 2022. 11. 9. 18:40

자유칼럼 2012-03-13 11:52:04

 

며칠 전 ‘자유칼럼’ 필진 가족이 서울 명동에 있는 은행회관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필진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황경춘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자유칼럼은 칼럼운영과 관련하여 필진이 모이기는 합니다만, 칼럼니스트의 생일 등 개인적인 기념일을 축하하는 모임은 갖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날 모임은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행사라 하겠습니다.

 

칼럼니스트 황경춘 선생님은 올해 미수(米壽), 즉 88세입니다. 이날 모임은 ‘미수의 칼럼니스트’를 훌륭한 선배로 둔 후배 필진이 그의 활동을 기리자는 뜻에서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88세까지 건강하게 여생을 사는 사람들은 점차 많아지고 있지만, 그 나이에 칼럼 집필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황 선생님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칼럼의 주제는 다양할 수 있지만 다른 글과 달리 시대적 흐름을 염두에 두어야 쓸 수 있는 글이어서 필자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독자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자유칼럼 필자는 게재일이 정해져 있으므로 마감 날짜를 지키는 일이 여간 심적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시간적 제약 아래 주제를 선정하고 글을 구성하는 일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닙니다.

 

황경춘 선생님은 한 달에 두 번 돌아오는 마감일을 어김없이 지키며 독자들에게 글을 보냅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후배의 입장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는 황 선생님보다 훨씬 나이가 적지만 현역 기자 생활을 떠난 지 오래되어서인지 글쓰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이럴 경우 황 선생님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황경춘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생으로 해방 공간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20세기와 21세기를 살아 왔습니다. 일생 기자로서 이 격동기에 활동한 그의 칼럼에는 그 시대의 흔적이 투사되고 개인적인 삶이 반영되어 나옵니다. 이제 이 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생생하게 전해주기가 거의 불가능한 역사의 흔적을 자신의 체험과 관찰의 기억을 되살리며 재생해냅니다. 그의 기억력은 88세의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황경춘 선생님은 노인문제에 대한 글도 자주 씁니다. 정책당국을 향한 메시지도 띄우지만, 나이 먹으면서 느끼는 갖가지 소회와 살아가며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를 전해줍니다. 황 선생님은 자신의 나이를 의식해서인지 노인 문제나 늙음에 대해 매우 절제하며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막 쏟아내면 아마 “노인이 주책”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서 그러는 모양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장수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지만, 지금 노령에 접어드는 사람들은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만 주변을 살펴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황 선생님은 ‘자신의 미수(米壽)’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남아 있는지 가늠할 수 없는 여생이니, 이제는 아름답고 밝은 것만을 보며 살아가겠다는 것이 이 늙은이의 조그마한 자기중심 이기주의입니다. 가능성 있는 소망을 최소한으로 줄여 만사에 무리 없이 안전운전을 기하려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황 선생님은 언젠가 쓴 칼럼에서 나이 들면서 눈물이 많아졌다고 피력한 적이 있습니다. 한 세기를 살아온 인생이니 그만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무슨 흠이 될까요. 온갖 소회와 눈물이 있기에 그의 노년이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황경춘 선생님은 오늘도 칼럼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치 과제를 안고 있는 대학생처럼 말입니다. 남에게 전해줄 이야기를 쓰겠다는 소망, 이것이 황경춘 선생님의 아름다운 노년생활의 원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