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빵집과 민주주의 위기
내일신문 2012-02-08 15:47:24
부(富)의 불균형이 국가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들이 경제적 민주화를 주창하며 재벌규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의 불균형 문제는 비단 우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산업사회가 모두 어느새 중증으로 앓고 있는 병이다.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이 들끓었고 작년 ‘월가를 점령하라’는 데모 물결이 뉴욕에서 발단해서 전 세계를 휩쓸었다. 지난 1월말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부의 불평등에 의한 자본주의 위기론이 주조를 이뤘다.
인류가 유사 이래 수천 년 동안 사실 불평등에 익숙하게 살아왔다는 것은 역사를 보면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부의 불평등에 참을 수 없는 불만이 전 세계에서 분출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으면서 21세기의 큰 특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MIT의 레스터 소로 교수는 17년 전에 ‘자본주의의 미래’라는 책을 냈다. 당시 꽤 주목을 받은 책이어서 지금 벌어지는 위기 논란과 관련하여 다시 꺼내 훑어보니 꽤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현대 선진사회가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권력의 적정한 배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신념위에서 출발한다. 즉 민주주의는 1인1표 원칙의 동등한 정치권력의 토대 위에 있고, 자본주의는 경제적 부적격자를 여지없이 퇴출시켜버리는 효율성을 최고 가치로 삼고 있다. 따라서 부의 불평등이 급속히 증대될 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단층지대가 형성되어 큰 지진이 일어날 위험에 처한다는 것이다.
과거 200년간 자본주의는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는 데 실패했지만 민주주의 정부가 시장에 적절히 개입하여 불균형을 완화하는 기능을 나름대로 수행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양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소로 교수는 “자본주의 불평등은 민주주의가 방어하기에 어려운 계절에 들어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앞으로 중산층이 축소되고 소득불균형이 심해지면 민주주의 정부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복지국가도 중제세력이 되지 못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 중재세력이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서로 교수의 주장을 놓고 보면 지난 10여 년 간 ‘어어’하는 사이에 한국에서 일어나는 부의 불균형 현상들이 위기의 여운을 남긴다.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혼재해 있는 마포 공덕동 근처의 우리 동네 골목에는 식료품가게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곤 한다. 작년에는 큰 과일가게가 생겼는데 몇 달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이 과일가게가 문을 닫기 전 근처에 큰 할인마트가 직영하는 미니 마트가 요란스럽게 개업선전을 하며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최근엔 공덕동에 ‘이마트’가 들어왔다. 개점하는 주말에 마트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일대에는 대형 할인마트가 없었던 탓에 먹거리 집과 함께 각종 생필품 영세 가게가 올망졸망한 골목마다 들어서 있는 곳이다. 동네사람들이 이마트에서 물건을 들고 쏟아져 나오는 것을 바라보는 가게 주인들의 표정이 그렇게 우울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최근 재벌가 자녀들의 빵집과 카페 진출을 놓고 대통령이 한마디 하자 철수하는 해프닝이 생기면서 재벌의 골목상권 침투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재벌에 의한 골목상권 붕괴는 이미 1990년대 재벌에서 대형 할인마트를 도입하면서 시작되었고, 재벌그룹의 편의점 체인과 홈쇼핑이 골목과 TV화면을 점령하면서 지금은 거의 평정 단계라 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재벌들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차려놓은 할인마트나 편의점에서 생활용품을 구입해 쓰고 있다.
사실 재벌가 딸의 빵집과 카페가 매출규모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마는 부의 불평등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양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의 상징적 사건으로 부각되어 여론의 질타로 이어진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90년대 후반 IMF구제금융 사태를 국민적 단결로 극복하고 났더니 재벌기업들은 국제경쟁력을 갖춘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반면, 중산층은 붕괴되고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어 버린 꼴이다. 대기업이 성장하면 그 과실이 나무에 떨어지는 빗물처럼 중소기업과 국민일반에게 골고루 퍼져나가는 ‘트리클다운’(trickle-down)효과는 미미해졌다.
부의 불평등 해소는 이제 국가적 의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제를 풀지 못하면 소로 교수의 우려처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단층이 미끄러지며 지진이 발생할지 모른다. 불평등이 극에 달하면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이 지적처럼 “막대한 부로 타인들의 삶을 지배하게 된 경제적 힘이 상속되어야 하는가.”하는 회의가 퍼질 수 있다. 올해 양대 선거가 부의 불균형을 해소해나가는 합의의 장(場)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