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그룹

돌고래 호르무즈로 가나?

구상낭 2022. 11. 9. 18:37

자유칼럼 2012-01-19 15:54:13

얼마 전 MBC TV에서 방영된 ‘남극의 눈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혹등고래의 집단 사냥 광경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여름에 남빙양에 모인 고래 여러 마리가 떼를 이뤄 바다 속에서 물거품을 일으킵니다. 물거품은 마치 그물처럼 크릴(새우의 일종)을 에워싸게 되는데, 이 때 고래들이 큰 입을 벌리고 수면 위로 떠오르면 크릴이 대량으로 고래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고래를 볼 때마다 물고기를 연상하다가 사람을 대하는 행동을 보고는 고도로 발달된 지능을 가진 포유동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의 동물 중에 가장 덩치가 큰 흰긴수염고래는 길이가 30미터에 무게가 150톤이나 나갑니다. 이 고래가 신기한 것은 청각이 고도로 발달하여 남극 바다에서 1만5,000 킬로미터 떨어진 북극 바다의 동족과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고래는 물에 거의 흡수되지 않는 20헤르츠의 저주파 소리를 내고 또 이 소리를 잡을 수 있는 청각구조, 즉 일종의 소나(Sonar:음파탐지기) 같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흰긴수염고래는 수심 1천 미터의 칠흑 같은 심해를 헤엄쳐서 대양을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래의 청각 능력과 높은 지능의 쓰임새를 전쟁에서 찾아냈습니다. 고래의 청각 능력을 수중에 설치한 기뢰를 찾아내는 방안으로 활용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지금 페르시아 만 일대에는 지난 연말부터 군사적 긴장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이란 산 석유 금수조치를 취하자, 경제 숨통이 막히게 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덤벼들고 있습니다. 이란이 직접 서방의 군함을 공격하지 않으면서 유조선을 꼼짝 못하게 봉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가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설치하는 것입니다. 혹여 이란이 봉쇄 조치를 취하는 날이면 국제 석유시장은 대 혼란에 빠질 것이며 유가가 200달러까지 치솟는다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NPR방송은 최근 이라크 전쟁 당시 미 5함대 사령관이었던 팀 키팅 해군 제독의 말을 인용, ‘이란의 봉쇄 조치에 대응하여 미 해군이 준비 중인 비밀 병기가 있으니 바로 청색돌고래’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란이 기뢰를 설치하면 미 해군이 즉각 기뢰 수색 훈련을 받은 청색돌고래를 투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청색돌고래의 기뢰탐지 능력은 지난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 해군에 의해 확인됐다는 게 키팅 제독의 설명입니다.

 

돌고래는 시력이 뛰어나지만 청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눈을 가린 돌고래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미국 동전 10센트(dime)와 25센트(quater)를 구분해 냈고, 100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구경 10센티미터의 금속 공을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미 해군은 샌디에이고에 군사용으로 훈련시킨 돌고래 80마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돌고래는 바다 속에서 기뢰를 탐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뢰 인근에 음향자동감지기를 떨어뜨려서 전문 잠수부들이 기뢰제거 작업을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돌고래는 몸무게가 가벼워서(500킬로그램 이하) 보통 접촉으로 기뢰가 잘 터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 해군은 50년 전 냉전시대부터 돌고래와 바다사자의 높은 지능과 뛰어난 청각에 착안하여 해군 기지에 침투하는 적군의 잠수부를 탐지하거나 작전 지역에서의 기뢰 탐지에 대비해 실용 방안을 연구해왔습니다.

 

인간은 전쟁을 수행하면서 동물을 광범하게 동원해왔습니다. 자동차가 발명되기 이전까지 역사상 인간이 가장 많이 전쟁에 동원한 동물은 말입니다. 세계1차 대전 때 희생된 사람은 1,000만 명이었고, 전장에서 죽은 말은 800만 마리였다고 합니다.

기원전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코끼리를 앞세워 알프스를 넘었고, 2차 대전 때까지만 해도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막 전투에서는 낙타가 유용한 병기였습니다. 그밖에 소, 노새가 전쟁물자 운송 수단으로, 개똥벌레는 지도 읽는 손전등 대용으로, 집비둘기는 전장에서 메신저 역할로 2차 대전에서도 광범하게 활용되었습니다. 발달된 후각과 지능을 가진 개는 탐색용으로 고대부터 전쟁에 애용되었던 동물로서 해상에서의 돌고래의 역할과 대비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전쟁을 발명했고, 전쟁무기와 기술을 점점 첨단화해 왔습니다. 돌고래의 전쟁 동원은 인간의 지적 능력의 축적된 결과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첨단화의 한 양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평화롭게 공생하고 싶어 하는 돌고래를 훈련시켜 전쟁에 투입하는 것은 야생 학대의 한 단면을 보는 것도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호르무즈에서 기뢰가 동원되고 돌고래가 이를 찾아 바다 속을 뒤지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