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권력욕 끝이 없다
자유칼럼 2011-12-29 09:23:49
러시아는 보통 때 아주 먼 나라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떤 때는 매우 가깝게 다가오는 국가입니다. 유럽과 아시아에 길게 걸쳐 있지만 한반도(북한)와 약 17킬로미터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어서 근현대사에서 한국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던 것이 러시아를 단순한 유럽 국가로만 볼 수 없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가 소련이 여러 민족 국가로 이루어진 연방국가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서기장이 된 1980년 대 초반 미국에서 러시아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부터입니다. 20년에 걸쳐 소련의 구석구석을 여행한 그 사람은 장차 이 나라가 10여개 국가로 쪼개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정말 그의 말대로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15개 나라가 분리되어 나왔습니다.
이렇게 분해되고 남은 모체 러시아는 서구식 민주주의 제도를 갖춘 국가로 거듭났습니다. 한 때 공산주의 종주국으로 국력에서 중국을 압도했지만, 문화적 유산 탓인지 정치 제도의 문제 때문인지 냉전시대 소련이 차지했던 정치적 경제적 위상은 중국에게 넘겨줘야 했습니다.
옛날의 제국은 해체됐지만 러시아는 아직도 미국의 1.7배나 되는 광대한 국토를 갖고 있으며 인구가 1억 5천만 명이나 됩니다.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으로 여전히 군사 강국이자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으로 국제 정치에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합니다. 넓은 국토에 매장된 막대한 천연자원이 이 나라의 국력의 기반입니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를 지탱하는 것이 에너지 자원,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입니다. 러시아는 세계 2번째 석유 수출국이고 세계 제일의 천연가스 수출국입니다. 석유 확인 매장량에서 러시아는 사우디에 뒤지지만 생산량에서는 난형난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합니다. 항상 정세가 불안한 중동에 에너지를 의존해온 국가들은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우죽하면 우리나라도 그 위험성이 큰 데도 불구하고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을 건설하자고 온갖 궁리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엄동의 모스크바가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세가 매우 험악합니다. 지난 주말 모스크바에서는 수 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블라디미르 푸틴의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데모를 벌였습니다. 직접적인 데모의 원인은 이달 시행된 러시아 총선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이끄는 집권 통합러시아당이 광범하게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는 혐의가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을 에는 추위에 모스크바 시민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든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반 푸틴’ 정서입니다. 러시아판 장기집권 반대 투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서방 언론은 그를 가리켜 현대판 ‘차르’(Czar)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 ‘슬라브어’는 라틴어의 황제에 그 어원을 두고 있듯이 절대 지배자를 뜻합니다. 대통령으로 8년간, 그리고 대통령을 사실상 지배하는 총리로 4년 동안 권력 행사를 한 데서 보았듯이 푸틴은 정말 옛 제정러시아의 황제 같은 권력을 누려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옐친 대통령 집권 동안 약화된 러시아의 권위를 일으켜 세우는 한편 석유를 비롯해 천연자원을 부국의 원천으로 삼고 경제정책을 추진하여 어느 정도 성공함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푸틴은 권력욕을 절제할 수 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또한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한 러시아 사회가 아직 서구 국가들처럼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제도적 장치와 시민 정신을 키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푸틴은 8년에 걸쳐 대통령직을 연임한 후 헌법에 의해 더 이상 출마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권력 연장을 위해 편법을 동원했습니다. 그가 임명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를 대통령 후보로 내보내 당선시킨 후 메드베데프로 하여금 자신을 총리로 임명하도록 조종했습니다. 메드베데프는 한마디로 푸틴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대통령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푸틴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메드베데프의 4년 임기가 내년 3월로 다가오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푸틴은 메드베데프의 양보를 받아내 집권 통합러시아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것입니다. 유권자들에게 그의 인기는 아직 건재해 보입니다. 게다가 뚜렷한 경쟁 후보도 없습니다. 그는 지난 12년 동안 자신의 권력기반을 튼튼하게 가꾸는 대신 도전자의 싹을 미리미리 잘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년 3월이면 3선의 대통령이 되어 옛 러시아의 영광을 부흥시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장기 집권은 부패를 부르고 결국에는 국민의 염증을 초래하게 됩니다. 러시아인들은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특히 석유수출로 벌어들인 부가 지배 엘리트 계층의 배만 불리는데 불만이 쌓여왔습니다. 소련 해체 이후 최대 인파가 몰린 이번 모스크바 시위는 12년에 걸친 푸틴 체제에 대한 불만이 터진 것이라는 게 서방 언론의 해석입니다. 그 동안 러시아 집권당은 헌법을 개정하여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의 임기를 6년으로 연장하여 놓았으니 푸틴이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푸틴은 이번 데모 사태로 일단 위기에 처한 것 같습니다. 데모대는 “푸틴의 시대는 끝났다.”는 기치를 내걸고 ‘반 푸틴’을 외치고 있습니다. 푸틴은 공개적으로 데모의 배후에 미국의 힐라리 국무장관의 음모가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푸틴의 권력욕을 비난하는 것은 미국인만이 아닙니다.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푸틴은 내년 대통령 선거를 포기해야 한다.”고 공개적인 요구를 하고 나섰습니다. 20년 전 스스로 권력을 포기한 그의 말이기에 외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위기를 맞은 푸틴이 고르바초프나 옐친처럼 정치력의 한계를 느끼고 권좌에서 내려오는 선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많은 독재자들이 걸었던 길처럼 강력한 힘으로 시민의 입을 막으며 권력을 추구할 것인지 세계는 주시하고 있습니다. 푸틴의 권력욕을 보면서 민주화 과정을 거치는 나라 국민이 겪는 진통을 공감하게 됩니다. 세계 에너지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자원 부국이자 한반도 문제에 발언권을 행사하는 우리 주변 4대 강국의 하나인 러시아의 정치적 진통은 우리의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기에 러시아인들의 민주화 진통이 잘 극복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