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읽다가
자유칼럼 2011-12-13 11:37:06
요즘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패턴의 드라마가 이 방송 저 방송에서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것을 보면, 그것도 유행인 듯합니다. 공개되지 않는 출생, 특히 부모의 과거가 벗겨지거나 비밀 입양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당사자들의 내면의 모순과 갈등이 부각되는 것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습니다. 언뜻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브 잡스의 출생과 입양이 오버랩 됩니다.
대형 서점에는 스티브 잡스의 전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드라마틱한 그의 인생 역정이 궁금하기도 하여 책을 한 권 샀습니다. 두께도 두껍고 값도 만만치 않지만 스티브 잡스의 제의를 받고 타임(TIME)편집장을 지낸 월터 아이잭슨이 몇 년에 걸쳐 취재하고 수많은 관련 인물을 인터뷰해서 객관적으로 쓴 책이라고 해서 더욱 흥미를 당겼습니다.
전기 앞부분에 창세기처럼 생부모와 양부모의 족보가 펼쳐집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잡스는 미국인 백인 여성 조안 쉬블과 시리아 유학생 존 잔달리 사이에서 잉태되었습니다. 아버지 반대에 부딪쳐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없게 되고 가톨릭 가정의 전통에 의해 낙태도 여의치 않게 되자 조안은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미혼모를 돌봐주는 의사를 만나 출산을 하게 되었으니 그 아이가 바로 스티브 잡스입니다. 원래 그 아이는 조안의 소원대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 입양되게 되었고 양부모의 첫 후보로 변호사 부부가 예약되어 있었으나 태어난 아이가 사내라는 이유로 거부되었습니다. 그래서 입양아로 받아들이게 된 사람은 2차 대전 때 해양경비대에 근무하다 제대한 엔진 정비사 폴 잡스와 그의 부인 클라라였습니다. 대학엔 들어가 보지도 못한 부부였습니다.
결과로 평가하는 셈이 되지만, 우리 세대 가장 창조적인 기업가로 자라게 된 스티브 잡스의 성장 환경으로는 자신이 포기한 아이를 입양할 양부모는 꼭 대학졸업자이거나 대학교육을 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모 조안의 일념과 아이가 태어난 곳이 IT산업이 움트기 시작한 샌프란시스코였다는 점이 중요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더욱 중요한 것은 양부모의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스티브 잡스의 성장에 절대적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폴과 클라라 부부는 입양할 때 약속한 대로 잡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풍족하지 못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무진 애를 씁니다. 스티브 잡스는 머리가 명석하기도 했지만 학교 다니는 동안 부모 속을 썩인 문제아였음이 전기 곳곳에 드러납니다. 공부보다 위험한 장난질을 하고, 부모에게 대들고, 마약과 가출을 밥 먹듯이 하고, 분수를 모르고 먼 곳에 있는 비싼 사립대 입학을 고집합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폴과 클라라 부부도 스티브 잡스의 고집에 적응해갔던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이들 부부는 스티브 잡스에게 특별한 가정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들은 입양 사실을 일찍부터 알려줬습니다. 그런데 잡스가 여섯 살 때 마당에서 같이 놀던 여자 아이가 “너의 진짜 부모가 너를 원했던 게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충격을 받고, 울면서 집안으로 달려갑니다. 이때 부모가 정색을 하며 해준 말은 “우리는 너를 선택했고 너는 특별한 아이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버려졌다” “선택됐다” “아주 특별하다”는 것은 스티브 잡스가 일생 잠재의식 속에 간직했던 사고였다고 아이잭슨은 말합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버려졌다”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냈습니다. “입양됐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내가 더 독립심을 느끼게 되었지만 결코 버려졌다고 느끼지 않았고, 내 부모는 내가 아주 특별하다고 느끼도록 해주었다.”고 술회합니다. 누군가 부모를 가리키며 ‘양부모’란 어감을 표현하거나 진짜 부모가 아니라는 투로 말하면 스티브 잡스는 날을 세우며 대들었습니다. “그들은 1,000% 내 부모다.” 그리고 생부모 얘기만 나오면 “그들은 내 정자은행이고 난자은행일 뿐이지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응수했다고 합니다.
전기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그가 받은 교육입니다. 폴과 클라라 부부는 어려운 살림에도 입양한 스티브 잡스를 위해 가정교육뿐 아니라 학교교육에도 무척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스티브 잡스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 클라라의 선행교육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입학 전에 읽기 공부를 가르쳤는데, 이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공부에 그만 흥미를 잃어 친구들과 수업 시간에 장난치는 개구쟁이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여자 선생님 의자 밑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학교에서 쫓겨납니다. 이 때 아버지는 아들 잡스에게 벌을 주는 대신 선생님을 찾아가 “스티브의 잘못이 아니라 그 애로 하여금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한 당신네의 잘못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들을 그만큼 특수한 아이로 취급했던 것입니다. 호기심으로 가득한 동심을 자극해주지 않고 쓸 데 없는 것을 외우게 하는 학교 교육에 스티브 잡스나 그의 부모가 모두 반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놓인 스티브 잡스에게 성자와 같은 사람이 나타납니다. 4학년이 되면서 그와 친구 한 사람이 특수반으로 편성되었는데 이모진 힐이라는 여자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말썽꾸러기 잡스를 몇 주일간 유심이 지켜보던 힐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힐은 수학 문제집을 내주며 “집에 가서 풀어 오거라. 잘 맞추면 과자와 5달러를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잡스는 문제를 풀어왔고 이렇게 두 달 정도 계속하자 더 이상 뇌물작전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공부에 흥미를 느꼈을 뿐 아니라 선생님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싶어 더욱 열심히 했기 때문입니다. 잡스는 이렇게 술회합니다. “만약 당시 그 여선생님이 없었다면 나는 난 감옥에 갔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받은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에 대한 자서전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요즘 벌어지는 한국의 교육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점수에 모든 것을 걸도록 강요되는 아이들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더 이상 호기심을 기르지 못합니다. 거의 모든 부모가 대졸자들이고, 임용되는 교사는 바늘구멍 같은 임용시험을 뚫은 짱짱한 실력파 교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부모와 학교 교사들은 무력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아이들은 학원에서 선행교육을 받는 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입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떤 부모도 이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스티브 잡스처럼 교육받을 수도 없고 그런 운명에 처해지는 것도 아니지만, 전기를 읽으면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에서 학원교육으로 쫓겨난 우리나라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심각하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