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등장
내일신문 2011-10-07 13:17:43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만, 최근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벌어진 두 가지 사태를 보면서 우연으로만 볼 수 없는 시대 흐름의 변곡점을 실감하게 된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지난달 17일 뉴욕 증권가에서 소수의 젊은이들이 월가의 탐욕과 경제적 양극화 등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에 항의하며 벌이기 시작한 데모가 지금 미국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1%가 행복해지기 위해 99%가 불행해지고 있다는 반(反)월스트리트 데모대의 정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도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반 월스트리트 데모 사태가 일어난 비슷한 시점, 서울에서는 ‘안철수-박원순 바람’이 정치권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시민운동가 박원순 변호사가 제1야당인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야권 단일후보가 됐다. 지난 한달 어간에 일어난 변화다. 내일이 불확실한 시민들에게는 놀라운 변화 정도겠지만, 제도권에 익숙해진 정치권 사람들이나 평론가들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다.
시민후보를 자처한 박원순 변호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 주자이며, 경선을 통과한 여세를 몰아 그 기세가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듯싶다. 여론조사에 근거해서 상식적 판단을 한다면 10월 26일은 ‘그가 웃는 날’이 될 가능성이 50% 이상이다.
그가 만약 시장에 당선된다면 충격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제2, 제3의 파장으로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권도 크게 흔들리고 말 것이며, 내년 총선과 대선 판도가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른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나경원 후보를 돕고 나서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반 월스트리트 시위를 확산시키고 ‘박원순 야권단일후보’를 만드는 데 결정적 촉매 역할을 한 것은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U-튜브로 상징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난공불락의 독재자 무바라크와 카다피를 붕괴시킨 아랍세계의 쟈스민 혁명의 불꽃은 SNS를 타서 번졌고, 3년 전 버락 오바마를 미국대통령으로 만든 동력은 SNS를 통한 정치모금과 메시지 확산이었다. 마찬가지로 현재 반 월스트리트 데모는 페이스북을 타고 미국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다.
박원순 변호사가 출마를 선언하고 ‘박원순펀드’를 내어 놓자마자 이틀만에 약 거의 40억원이 입금된 것도 SNS의 힘이었고, 지난 3일 국민경선투표에서 민주당 조직투표에 몰려 위기에 처한 박원순 변호사를 구출한 것도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SNS였다. 특히 경선투표 당일 트위터와 문자 메시지를 통한 박원순 캠프의 호소가 어떻게 위력을 발휘했는지는 투표율 추이와 취재기자들에 의해 생생히 확인되었다.
반 월스트리트 시위나 ‘박원순 바람’은 뭔가 꽉 막힌 제도적 현실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층이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맥락이 닿아 있다. 이런 현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직은 불분명하지만 기존의 시스템에 큰 변화를 몰고 오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보수층이나 기성세대는 박원순을 단순히 학창시절에는 반정부 데모를 하던 운동가, 낙선낙천 운동과 인권운동을 하던 변호사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게 기존의 아날로그 미디어에서 알려진 그의 모습이고, 2002년까지 그의 실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SNS 미디어 세대에게 그려지는 그는 기성세대에 눈에 비친 이미지와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는 국내외여행을 할 때면 PC와 카메라를 담은 배낭을 지고 간다. 어디서든 PC를 펴놓고 미국 일본 유럽 선진국 도시의 문물과 전문가의 강의를 노트하고 사진을 찍어 열심히 편집한다. 그는 스스로를 ‘소셜디자이너’라고 부르며 희망의 대안을 얘기한다. 그는 페이스북, 블로그, 트위터로 그의 팔로어들과 소통한다. 그를 이제 정치인으로 분류하면 그는 SNS를 정말 잘 쓸 줄 아는 정치인의 한 사람이다.
박원순의 등장으로 정치권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정치인뿐 아니라 많은 식자들이 대의정치의 실종을 염려한다. 맞는 지적이다. 그러나 박원순을 부른 건 대의정치의 주역을 맡은 정당인들이다. 너무 많은 지식과 정보를 획득한 청년 세대, 그러나 그들의 미래는 불확실하고 희망은 실종되었다. 그들의 불만은 안철수를 통해 박원순을 찾아낸 셈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2년 전 쓴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회적 대립과 갈등은 벽이 높고 현실은 답답하고 미래는 어둡다. 우리는 지금 병목 지점에서 헤매고 있다. 뭔가 잘 풀리지 않고, 문제를 풀 주체도 없는 아주 답답한 형국이다. 이럴 때 나는 이렇게 되뇐다. ‘쿼바디스, 도미네.’ 정말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그의 정치 참여는 이제 갈 길을 찾았다는 뜻일까.
박원순의 등장, 이는 국민이 희망을 잃고 피로에 빠져 있음을 알리는 신호음이며, 정치권의 대 지각변동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그의 성패에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