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서울시장이라면 좋겠습니다
자유칼럼 2011-10-03 16:47:54
때 아닌 서울 시장 보궐선거로 이 가을이 뜨거운 선거판 정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10월 26일 서울 시장 선거 결과에 따라 어차피 정치적 풍향이 바뀌면서 내년 봄의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내년 연말의 대통령선거에 이르기까지 쓰나미 같은 정치 격변의 시대로 들어설 것입니다.
단일화 과정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시장 후보로 유력하게 떠 오른 사람은 나경원, 박영선, 박원순 씨 등 세 사람입니다. 10월 26일 저녁이면 이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소위 정치적으로 소통령이라 불리는, 서울시장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급박한 변화가 될 것인지, 그 날이 오면 정치인도 일반 시민도 아마 다 같이 놀랄 것이라고 봅니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이렇게 선거가 행해질 줄 몰랐고, 이들 세 사람이 시장후보로 등장할 줄 몰랐습니다. 세 사람은 여론주도층에게는 꽤 낯익은 얼굴들이지만 일반 시민들이 판단하기에 충분하게 알려진 인물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스컴, 특히 신문이 이들을 소개하면서 자질 검증을 강조합니다. 신문들이 검증의 기준으로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잣대가 있습니다.
“행정 경험이 있는가?”
과연 ‘행정 경험’이 서울 시장의 자질에서 얼마나 중요한 덕목이 될까요?
‘행정 경험’이란 얘기를 들으니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지난 9월 15일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대정전사태(블랙아웃)를 되새겨 볼 때 행정 경험이란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었는가 하는 회의를 갖게 됩니다.
당시 사태 책임의 최고위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행정경험이 풍부한 고위 공무원 출신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행정의 총책을 진 지식경제부 장관은 재정경제부에서 잔뼈가 굵은 엘리트 직업 공무원 출신이었고, 전력수급을 맡은 전력거래소 이사장 역시 지식경제부에서 행정 경험을 두루 쌓은 관료 출신이었습니다. 지식경제부든 전력거래소든 행정조직입니다. 이런 조직을 운용하는 데는 행정경험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사태에서 그 경험이라는 게 아무 기능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버튼 누르는 매뉴얼만 원시적으로 작동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인구 1,000만 명의 서울시가 요구하는 시장은 행정 경험을 리더십의 최고 덕목으로 내세우는 기능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 시대 변화를 미리 읽어내는 직관도 있어야 하고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소명의식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야 좋은 서울 시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장을 대통령보다 더 명예로운 자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시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대통령보다는 시장이 자신의 용량과 정서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시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소한 문제에 정치 생명을 거는 도박을 하는 시장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장이 되자마자 청와대로 이사하는 꿈에 부풀고, 이를 부추기는 참모진에 둘러 싸여 있는 시장은 싫습니다. 이런 시장은 틀림없이 눈에 보이는 광장이나 치장하고 전시성 행정에 돈을 물 쓰듯 하거나 또는 앞으로 감당할 수 없는 예산을 써가며 포퓰리즘 행정을 하려 할 것입니다. 이런 시장은 틀림없이 3년 또는 4년 계획을 세워 눈에 드러나는 일을 추진하고 그 긍정적 평가가 사그라들기 전에, 또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들기 전에 다른 집 대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시민의 안전을 미리미리 챙겨 준비하는 시장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산사태와 도로의 유실이 도시계획이 잘 못되어 일어나는 것인지, 기상 악화 탓인지, 아니면 두 가지 요인이 합쳐져서 일어나는 것인지 객관적인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면밀히 분석하고 대응해주는 시장이 필요합니다. 보도블록이 멀쩡한 데도 연말만 되면 갈아치우느라 인도를 파헤칠 게 아니라 균열이 생겼어도 잘 보이지 않는 산비탈을 잘 살펴서 홍수를 예방하는 그런 시장이 좋습니다.
서울과 지방을 대립적 시각으로 보지 말고, 공생공존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서울시장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인구 1,000만 명의 서울은 하마 같은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지방의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빨아먹기만 하고, 지방으로 무엇을 되돌려주는 데 인색합니다.
재벌총수를 동네 통닭집에 초대해서 도시환경을 놓고 대화하고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공동체 조성에 참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협조를 얻어내는 시장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재벌 총수가 통닭집에 가기를 싫어한다면 웃으면서 “호프집은 어떻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시장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시장의 얼굴만 보아도 가난한 서민에겐 희망을 느끼고, 부유한 사람에겐 배려와 공동체 건설의 욕구가 솟아나게 하는 시장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아시아의 거점도시로서의 비전을 제시하는 시장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라고 합니다. 국가의 경제력과 인구를 토대로 베이징, 상하이, 도쿄가 아시아의 대표적 도시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역사가 깊고 이들 아시아 대도시의 중간에 있어서 지정학적 위치가 매우 좋습니다. 하드웨어로서의 도시 형태도 멋있게 가꿔야겠지만 서울에 있으면 누구나 창의성이 샘솟는 그런 서울을 만들어가는 시장이 보고 싶습니다.
오는 10월 26일은 그런 격조 높은 시장, 또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뽑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