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관련

올레길 옮김이

구상낭 2022. 11. 7. 12:18

2010-04-22 18:53:32

 

올해 마흔여덟 살인 강명남 씨는 제주시에 삽니다. 그는 10년 동안 택배 서비스 일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업종이 경쟁이 심하고 척박해서 생계를 꾸려나가기가 팍팍합니다. 벌이도 시원찮은데 상대하는 사람들로부터 대접은커녕 잔소리와 불평만 듣기 십상입니다.

 

강명남 씨는 지난 3월 중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새 직업을 하나 만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직업의 명칭을 ‘올레길 옮김이’라고 붙였습니다.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의 배낭을 출발지 숙소에서 도착지 숙소까지 옮겨주고 수수료를 받는 신종 직업입니다. 

 

올레길 걷기 붐이 확산되면서 닷새나 일주일씩 제주도에 머물며 걷는 사람도 꽤나 많아졌습니다. 이런 올레꾼들은 짐이 무거운데 펜션이나 민박에 배낭을 두고 하루 코스를 걷고 나서 택시를 타고 다시 배낭을 찾아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올레 5코스의 중간인 서귀포시 위미포구 근처에 택배 사무실을 두고 있던 강명남 씨는 올레꾼들이 날로 늘어나고 그들의 걷는 행태도 다양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택배 일로는 먹고살기가 힘들어 고심해온 그는 올레꾼과 자신의 택배서비스 경험을  연결하는 방안이 없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무거운 배낭을 맡기고 또 찾아가는 올레꾼들의 고민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해주면 좋은 서비스 업종이 되겠다는 데 착안했습니다. 

 

강씨는 올레 코스의 주요 숙박업소 주인들을 찾아 명함을 돌리고 자신이 ‘올레길 옮김이’ 일을 하겠다며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올레꾼들이 배낭 옮기는 것을 고민하는 것을 잘 아는 숙소 주인들은 긍정적으로 반응했고, 그는 아침 8시 갤로퍼 한 대를 끌고 나와 1코스인 성산포에서 시작하여 제주섬 한 바퀴를 돌며  배낭을 옮겨줍니다. 3개 코스 거리(약 45킬로미터)는 배낭 한 개에 3,000원을 받고, 그 이상 거리는 5,000원씩 받습니다.

 

강명남 씨가 요즘 제주 섬을 한 바퀴 돌며 옮겨주는 배낭은 하루 10개 정도밖에 안 됩니다. 수입은 3만원 남짓입니다. 갤로퍼 운행비를 계상하면 마이너스 장사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새로운 직업 개척자로서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5월이 되어 올레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고 또 자신의 ‘올레길 옮김이’ 일이 알려지면 고객이 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배낭 50개만 옮기면 먹고 살 수 있다고 셈해봅니다. 또한 올레꾼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는 사람이 많지만 역코스를 걷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어 아내가 제2의 ‘올레길 옮김이’로 나서게 될 날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강씨의 ‘올레길 옮김이’ 일이 알려지면서 듣도 보도 못했던 펜션이나 민박집에서 연락이 오기도 하고, (사)제주올레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입수한 올레꾼이 직접 문의해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강씨의 기분을 흐뭇하게 만드는 것은 올레문화와 정서에서 느끼는 훈훈함입니다. 펜션이나 민박 주인들이 돈에 얽매이기보다는 올레꾼한테 좋은 서비스를 베풀려 하고, 그게 강씨에게도 전달되어 일하는 마음이 가볍다는 겁니다.

 

강씨와 배낭을 맡긴 올레꾼과는 거의 대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강씨와 올레꾼 사이에는 정감이 교류됩니다. 올레꾼은 숙소에 놓아둔 네임택(이름표)에 이름과 원하는 도착장소를 써놓고 돈을 꼬깃꼬깃 접어 둡니다. 강씨는 이 짐을 차에 싣고 올레꾼이 원하는 다음 숙소에 운반해주고 문자 메시지를 띄웁니다. 이 문자 메시지를 받은 올레꾼들은 거의가 마음을 담아 응답 문자를 보내옵니다. 강씨는 이런 문자 교환을 통한 올레꾼들과의 교감에 희열을 느낍니다.

 

올레 걷기 붐은 대단한 기세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요즘 관광 철을 맞아 제주공항에는 등산복을 입은 사람이 와글와글 비행기에서 내립니다. (사)제주올레 관계자도 그 숫자를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대략 하루 1,000명으로 추산합니다. 그러나 관광회사 사람들은 2,000명이 넘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에어버스 5~10대를 동원해야 이만한 올레꾼들을 실어 날을 수 있는 큰 숫자입니다. 요즘 제주도 비행기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있는데 올레꾼 영향도 큰 것 같습니다.

 

따라서 올레 붐은 제주도의 숙박 패턴을 비롯해서 지방경제를 상당히 바꾸고 있습니다. 재래시장이 활성화되고 바닷가 가게나 민박이 살아납니다. 대신 미로공원 같은 기존의 관광지는 입장객이 15퍼센트나 줄었다고 합니다. 호텔도 별로 반가운 눈치는 아닙니다. 고용시장에 큰 변화는 아직 감지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올레로 인해 새로운 직업 종류가 생긴 것은 강씨의 ‘올레길 옮김이’가 유일한 듯합니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어렵지만 이렇게 새로운 직업이 생기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직업 종류의 다양성, 특히 지식정보 서비스업의 다양성은 선진사회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최근 통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002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직업의 종류는 1만2천3백여 가지였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2배였습니다.

 

직업이라는 게 단순히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일만은 아닙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계발하고 발전시키는 성취감도 중요하고, 또 직업을 통해 사회와 소통해가는 삶의 묘미도 중요합니다. 강씨가 ‘올레길 옮김이’이가 된 후 기분이 좋아진 것은 이런 희망이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일자리 창출은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새로운 일자리 종류가 생겨나고 또 사라집니다. 40년 전에는 버스 안내양이 흔한 직업이었습니다. 30년 전까지도 타이피스트가 흔한 사무직 직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사라진 직업입니다. 그리고 당시 생각지도 못했던 IT산업이나 서비스 직업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올레길 옮김이’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강씨 한 사람만이 갖고 있는 직업입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새로운 추세를 포착하여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의 수입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매우 신선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