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2018년 평창에 눈이 안 오면

구상낭 2022. 11. 9. 18:25

내일신문 2011-07-26 14:29:34

 

2018년 겨울이 너무 따뜻해서 평창에 눈이 내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더반 IOC총회에서 쟈크 로게 위원장이 ‘2018 평창’을 선언했을 때 전 국민이 열광하는 환호를 듣다가 문득 떠올랐던 생각이다.

세 번의 도전 끝에 겨울 올림픽 개최지 유치에 성공한 한국. 감격할 만하다. 강원도의 끈기와 한국의 국력을 새삼 실감한다. 이제 한국은 여름 올림픽과 월드컵은 물론 겨울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를 자신 있게 개최할 국력, 즉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가진 몇 안 되는 국가로 성큼 자랐다.

한국에 겨울이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2018년을 생각하며 눈 안 오는 평창을 말하다니, 경사 난 집에 재 뿌리는 격이다. 반론이 나옴직하다. “지난 겨울을 되돌아 보아라. 온난화니 뭐니 해도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졌지 않냐. 눈 안 오는 2018년 평창, 엉뚱한 상상 말아.”

맞다. 엉뚱한 상상이다. 하지만 이런 상상도 필요할지 모른다. 하늘이 하는 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나름대로의 근거를 대라면 이런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 인류는 지금 빙하가 줄줄 녹아가는 기후변화 시대에 돌입했다. 온난화의 속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과학자들 중에는 해가 갈수록 온난화는 심해지며 임계점을 넘어서면 기후 패턴이 한꺼번에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 100년 간 우리나라 평균 기온은 세계 평균보다 2배나 높아졌다. 온난화의 영향권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증거다. 기상 통계 및 올해 장마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듯이, 강수량이 늘어나고 있고 그 패턴도 열대성 폭우로 변하고 있다. 태풍이 접근했다하면 대개 중부 지방까지 휩쓸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진다. 여름에는 열대야 날 수가 많아졌고, 겨울엔 한강 결빙 일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여름에 비가 많아지면 일반적으로 겨울에 눈도 많이 내릴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2018년 평창은 눈이 많이 내려 최고의 설질(雪質)을 자랑할지 모른다. 그러나 7년 후의 기상을 지금 예상하는 것은 웃기는 얘기다. 눈과 비는 같은 물질로 사소한 기온차로 엇갈리지만, 눈과 얼음 위에서만 가능한 겨울 올림픽은 그 사소한 차이 때문에 성패가 갈린다. 지난 10년간만 해도 강원도의 강설량이 겨울 레저 뉴스의 초점이 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평창은 역대 동계 올림픽 개최지 중에서 나가노와 함께 가장 저위도 지역에 속한다. 평창의 위도는 북위 37도28분이고, 나가노는 36도15분으로 평창이 더 북쪽이다. 두 곳 다 고도 700미터이니 평창이 훨씬 나아 보인다. 그러나 나가노는 3,000미터 높이의 일본 북 알프스에 둘러싸인 눈의 고장으로 적설량이 11미터가 넘는다.

스포츠, 특히 겨울스포츠와 날씨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 평창의 제2 도전은 온난화일 수도 있다. 평창 올림픽이 가까워질수록 기상청의 스트레스는 높아만 갈 것이다. 기상청 사람들의 걱정으로만 끝나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이런 엉뚱한 상상에 한 친구가 걱정도 팔자라는 투로 말했다. “두바이를 보라. 열사의 사막에 스키장을 만들었잖은가. 설령 눈이 오지 않는다 해도 인공 눈을 만드는 세상이야. 겨울에 눈 잘 안 오면 우리나라 스키장들 거의 인공 눈으로 장사해. 우리나라가 그 건 잘 할 거야.”

맞다. 두바이가 있구나. 전기 문명을 최대로 이용해서 겨울을 여름같이 여름을 겨울같이 만드는 세상이 아닌가. 눈이 오지 않으면 눈이 오게 하는 ‘평창의 기적’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열정과 경제력이 있겠지.

그러나 ‘두바이 신기루’에 너무 의존하는 올림픽이 되지는 말았으면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되어도 따뜻해지는 봄을 돌려놓을 수는 없다. 석유를 펑펑 쓰며 사막에 눈이 내리게 만드는 방법이 얼마나 지속성이 있을까.

여름 올림픽과 월드컵을 칭찬받으며 개최했다. 한 국가의 위상을 과시하는 데 그만하면 성공한 것 아닌가.

2018년 겨울 올림픽은 그런 과시용이 아니었으면 싶다. 서울이 아닌 인구 4만의 평창이 숨 쉬는 올림픽, 끝나고 나서 빚더미와 회색 콘크리트 벽만 남아 있는, 토건 기술과 돈과 경제력에만 의존하는 재벌 올림픽이 아니라 지구촌의 화두인 ‘그린’(Green) 개념을 세계인이 공감하게 진정으로 전파한 올림픽이 되었으면 좋겠다. 국력과 화려함을 보여주는 것은 이제 중국에 맡기고 시대적 가치를 잘 반영하는 올림픽을 만든 일, 그게 진정한 한국의 소프트파워이고 인류에 이바지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