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반기문과 현대차

구상낭 2022. 11. 9. 18:23

내일신문 2011-06-15 14:25:19

최근 나라 밖에서 들려온 뉴스 중에 한국과 관련된 두 개의 소식이 관심을 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재선에 도전했고, 현대 기아차가 지난 5월 미국 자동차판매 시장 점유율 10%를 돌파했다.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개의 뉴스를 연계시킬 수 있는 키워드, 그건 바로 국운(國運)이 아닌가 생각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올해 말 5년 임기가 끝난다. 유엔사무총장의 재선을 결정하는 요인은 국제여론과 그에 기초한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의 비토 여부다. 유엔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외신에 따르면 반기문 총장의 재선은 거의 확실시되는 것 같다. 도전장을 내밀 뚜렷한 인물이 없고 5개 상임이사국의 분위기나 국제여론도 반총장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전한다. 그가 재선에 성공하면 2016년까지 유엔의 수장으로서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조정자로서 국제사회를 대변하게 될 것이다. 운이 좋으면 노벨평화상 같은 것도 받을지 모른다.

1992년 8월까지만 해도 한국은 유엔회원국이 아니었다. 첨예한 냉전구조 아래 남북한이 대립하며 결코 상대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엔총회가 열려도 한국은 초라하게 옵저버석에서 남의 나라 사람들이 떠드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한반도 문제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뤄져도 한국 외교관들은 안보리를 제집 드나들 듯 하는 일본 외교관으로부터 귀동냥을 해야 했다. 수많은 유엔 산하 기구에서도 한국은 찬밥 신세로 고위직 직원 하나 배출하기가 어려웠다.

탈냉전 시대가 되자 한국은 1992년 9월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라는 방법으로 유엔총회 의석에 앉을 수 있었다. 마침 그 때 유엔을 취재하면서 뉴욕 유엔본부 마당의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올라가는 것을 보고 한 시대의 도래를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인이 15년 후 유엔사무총장이 되는 것은 한국 외교관마저도 꿈에서나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대륙 순환제로 선출되는 유엔사무총장의 자리라서, 아무리 인물이 걸출한 후보도 때를 못 만나면 앉을 수 없다. 따라서 반총장은 시운(時運)을 만났던 것이고, 우리나라에게는 국운이 좋았다. 반총장의 재선된다면 이는 국운의 연장이 아니라 국운의 확장이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재선된 유엔사무총장의 역할과 능률은 국제사회나 배출국을 위해서도 초선과는 비교할 수 없이 힘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현대 기아차가 지난 5월 미국 자동차 판매 점유율 10%를 넘어서면서 GM, 포드, 클라이슬러, 토요타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 10%는 우리나라 자동차 제조업체로선 대단한 약진이며 꿈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한국이 휴대폰, TV, 조선, 반도체 등의 제조업에서 계속 두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자동차만큼은 그 의미가 더 깊다. 조립 제조업의 총아로서 자동차는 갈수록 첨단화와 고가화가 이뤄지고 있어 메이커와 소속 국가의 자긍심은 매우 높다. 미국 판매시장 점유율 10%를 차지하는데 소나타와 아반테와 같은 중형 자동차의 판매가 두드러지게 기여했다는 것도 의미 있다.

5월 미국시장에서 현대 기아차 판매가 약진한 것은 동일본의 대지진으로 일본 자동차회사의 생산차질이 가져온 반사이익이 컸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미국 자동차 시장이라는 점에서 이런 반사이익도 메이커나 소비자에게 심리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이 또한 시운(時運)이라 할 만하다. 25년 전 현대 엑셀이 미국 땅에 상륙했을 때 엑셀을 몰고 미국 정비소에 들리자 “흠, 재미있군.”이라며 신기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20년 전 국제 외교무대는 한국인에게 불모지였으나 지금은 유엔의 수장 자리에 한국인이 앉아 있다. 25년 전 미국의 도로에는 현대차가 한 대도 없었지만, 지금 미국시장에서 팔리는 자동차 10대 중 1대는 현대 기아차다. 오늘의 젊은이의 눈에는 당연한 일로 보이지만, 25년 전의 젊은이가 오늘을 보면 그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해외의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거리를 넘치는 자동차, 집안을 꽉꽉 메운 가전제품, 대학 진학율이 80%가 넘는 교육열, 인산인해를 이루는 해외여행, 세계를 누비는 한류스타의 물결 등 소비가 풍요롭다.

국가 단위로 보면 국운의 융성기를 맞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젊은이 세대에 팽배한 무력감이 비대칭성을 이루고 있어 혼란스럽다. 모처럼 가속도가 붙은 국운이 꺾이지 않기 위해서는 희망의 수레바퀴를 돌릴 수 있는 지성적 자극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