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수소경제’ 선언
2019-01-24 12:02:10 게재
대통령의 말이 무섭기는 무섭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지역경제 투어의 첫 방문지로 울산을 찾아가서 국가 에너지원을 화석연료에서 수소로 바꾸는 ‘수소경제 시대’를 선언하자, 가장 야단법석의 반응을 보인 곳은 증권시장이다. 현대자동차를 선두로 하여 수소차와 조금만 연관성이 있는 회사의 주식 가격이 폭등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뒤질세라 지방 정치인, 특히 자치단체장들이 수소경제에 관심을 쏟고 나선다. 충북지사는 대청호에 수소선박을 띄우는 아이디어를 얘기했고, 경기도는 정부의 수소경제 로드맵을 구체화하겠다며 수소차 3000대 보급계획을 세웠다. 전북도는 새만금 이용과 관련지어 수소경제를 들먹인다.
이렇게 수소경제에 부산을 떠는 사람들도 있지만, 컴맹이 컴퓨터 바라보듯이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는 사람도 많다. 수소가 석유나 천연가스처럼 일상생활 속에 와 닿는 에너지원이 아니기 때문에 ‘수소경제’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이 수소경제를 선언한 울산은 의미있는 도시다. 한국의 중화학과 자동차공업이 꽃핀 곳이다. 울산의 석유화학 단지에서는 비교적 풍부한 부생 수소가 산출되며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어 수소경제 정책이 대통령 예상대로 추진되면 수소 산업 중심지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수소경제는 에너지원을 석탄과 석유에서 수소로 바꾸는 산업구조의 혁명적 변화입니다. 우리로서는 국가 에너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신 성장 동력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차 및 수소연료전지 분야 기술을 보유했다고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소경제에서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정부 의지를 피력했다. 즉 수요 측면에서 정부가 시장을 창출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수소차 보급 뿐 아니라 수소연료발전에 국가 예산을 대량 투입하겠다는 뜻을 비친 것이다. 증권시장과 지방 정치인들의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다.
수소차와 연관있는 회사 주식 가격 폭등
대통령이 제시한 수소경제의 축은 두 가지다. 첫째 자동차 등 운송수단의 에너지원으로 수소를 쓰겠다는 것이고, 둘째 가정이나 산업시설이 쓰는 전력을 수소를 통해서 얻겠다는 것이다. 운송수단이든 발전수단이든 수소에너지의 공급은 한 가지 방법, 즉 수소연료전지를 통하게 된다. 현재 한국의 국민생활에서 전력공급과 자동차 운행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화력, 원자력, 재생에너지를 수소로 대체할 수 있다면 그 경제적 환경적 파급효과는 대단할 것이며, 수소경제’란 말이 의미 있는 개념이 된다.
‘수소경제’란 말은 1970년대 미국에서 나왔다. 당시는 중동정세의 불안으로 석유 값이 폭등했을 뿐 아니라 석유 소비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석유 고갈론이 머리를 내밀 때였다. 지구 표면의 70%인 물이 바로 수소 자원이라는 개념에 착상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지구온난화 문제가 인류의 최대 환경문제로 대두하면서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수소가 떠올랐다. 수소경제 개념에 일찍 눈을 뜬 것은 일본이었고, 한국에선 현대자동차가 수소차 개발에 일찍 나서면서 수소자동차 기술에서 일본 토요타와 함께 세계를 선도하게 되었다.
수소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일찍 싹텄음에도 수소에너지 이용이 잠수함 등 군사용이나 우주로켓 등 우주항공산업에 국한되었던 것은 수소의 추출, 저장, 수송, 보급에서 경제성이 화석연료나 원자력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도전을 극복하고 수소경제를 선도해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런 의지의 배경에는 현대자동차가 수소차 개발에 투자하면서 축적한 기술과 더불어 석유화학공업의 부생 수소가 비교적 풍부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의지가 크고 현대차가 수소차 양산체제를 갖춘 만큼 수소차 보급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한국은 미세먼지가 국민건강 최대관심사여서 공기 정화기능까지 갖췄다는 현대 수소차에 대한 소비자 친밀감은 크다. 정부가 수소차 충전소 건설과 수소차 보조금에 많은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문제
하지만 수소경제가 대통령 그림대로 점화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벽이 높다. 특히 수소연료발전소까지 염두에 두면 수소 양산 기술과 체제를 갖추는 것은 가장 높은 벽이다. 수소는 네 가지 원료,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와 물에서 추출된다. 그런데 세계 수소생산을 보면 화석연료로부터의 수소 생산은 96%나 되는데, 물을 전기분해하여 얻는 수소 양은 4%다.
세계가 수소경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기후변화 방지, 즉 저탄소사회로 가야 하기 때문인데 수소를 얻기 위해 화석연료를 쓰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문제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수소경제의 형태는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를 추출하는 것이다. 이때 대두되는 문제는 물 분해에 사용할 전기는 어디서 나오느냐는 것이다. 수소를 얻기 위해 화력 원자력 재생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화석연료를 직접 쓰는 것보다, 수소를 만들면서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 문제다. 또 경제성도 문제다. 이들 문제를 푸는 것이 수소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