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우원식 의원의 ‘탈원전’ 논쟁
2019-01-14 13:01:00 게재
탈(脫)원전 정책은 문재인정부 산업정책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 정책은 약 60여년에 걸쳐 원자력발전을 없애나가는 장기계획인데, 문재인 정부가 ‘개혁 조급증’ 때문인지 급진적 정책으로 포장한 측면이 강하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탈원전’을 주요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고,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고리1호기 폐로 기념식에서 연설하며 ‘탈핵시대’란 단호한 용어를 사용했다.
야당과 원자력학계 및 관련 산업계는 심한 반발을 계속했지만, 사안의 복잡성과 중요성에 비해 민주당 안에서 그동안 문제 제기가 없었다. 청와대가 가면 따라가는 종래 여당 정책 패턴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여당 안에서 탈원전 정책의 기조를 깨는 목소리가 나왔다. 주인공은 송영길 의원. 그는 지난 11일 원자력계 신년하례회에 참석해 정부가 중단하기로 결정한 신한울 원전3호기와 4호기 건설 재개를 검토할 필요를 언급했다.
송 의원은 그의 주장의 배경을 원전산업 생태계 붕괴 방지에 두었다. 노후 원전과 화력발전을 중단하는 대신 신한울 3·4호기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신규 원전 건설 중단으로 기자재 공급망이 붕괴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원전의 안전한 운영, 수출을 위해 기자재가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 의원의 이런 발언은 그동안 원자력계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요새 정치인들이 잘 쓰는 트위터를 이용한 것도 아니고,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이라면 참석을 꺼릴 것 같은 원자력계 행사에 나와서 의견을 말했으니, 어쩌면 그가 말하고 싶었던 속내를 피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당 우원식 의원이 즉각 송 의원을 비판했다. 우 의원은 12일 페이스북에서 송 의원의 주장에 대해 “시대의 변화를 잘못 읽은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고 논평했다. 그는 “우리 경제,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에너지 전환은 흔들림 없이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는 현실적 재앙
여당내의 탈원전 논쟁은 파장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두 정치인이 여당 내에서 갖는 중량감은 크다. 송영길 의원은 4선으로 인천시장 경력을 지녔다. 우원식 의원은 3선에 원내대표까지 경험했다. 특히 우 의원은 환경운동 경력을 갖고 있으며, 현재 민주당의 기후변화대응 및 에너지전환산업육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니 여당의 에너지 환경 정책을 주도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중량급 여당 두 사람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폈으니 민주당 분위기가 싸하게 무거워졌을 법하다. 이해찬 대표가 양쪽의 견해가 불붙지 않게 말리는 형국이다.
이 대표는 송 의원의 자제를 바라는 듯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이 있는데,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검토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60~70년이 지나 탈원전을 하게 되는데 긴 과정을 밟아 나가면서 보완할 점은 보완을 하는 논의 과정은 필요하다"고 송 의원을 달래는 듯한 여운을 남겼다. 민주당 내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놓고 다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청와대의 권위에 큰 상처를 줄뿐 아니라, 청와대가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니 에너지 정책에 일대 혼선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영길 의원의 문제 제기로 탈원전 논쟁은 다시 점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야당도 그렇지만 그동안 탈원전 정책을 비판해온 원자력 학계와 산업계가 송 의원의 주장에서 에너지를 얻어 정책변경을 요구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 논평을 하자면, 송 의원과 우 의원 논쟁을 보며 아쉬움을 느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화석연료, 원자력, 재생에너지의 배합(MIX)을 보다 종합적이고 통찰력 있게 제시했어야 했다.
기후변화는 작년 여름 폭염 기록에서 보았듯이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적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계 각국 전문가들로 구성된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위원회(IPCC)는 작년 10월 기온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기준으로 섭씨 1.5도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다급한 경보음을 국제사회에 울렸다. 현재의 화석연료 사용추세를 그냥 두면 절대 불가능한 목표다. IPCC과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을 2010년에 비해 45%줄여야 하고, 2050년까지 ‘배출 제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30년 후엔 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일체 쓰지 말라는 얘기다.
중간평가 통해 정책 보완해야
국내적으로 보면 미세먼지 문제가 최대의 환경 이슈다. 미세먼지나 기후변화나 그 원인은 화석연료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배출하지 않은 에너지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다. 물론 원자력의 위험성은 크다. 그러나 원자력 축소로 가던 영국이 원자력발전을 늘리는 정책으로 선회한 것은 기후변화 재앙과 원자력 위험성을 비교 평가한 선택이다. 재생에너지가 인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켜줄 때까지 원자력에 시간적 완충역할을 맡기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탈원전·신재생 에너지정책을 가동한지 18개월이 지났다. 정부 스스로 중간평가를 통해 정책을 보완하는 것도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다. 그걸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대라고 생각하면 할 말이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