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세오’-한·베트남 관계의 촉매
2018-12-20 12:31:05 게재
지난 15일 제주도에서 밤늦게 택시를 탔다. 차 안이 스포츠 중계방송 소리로 요란했다.
“소리 좀 낮출 수 없나요?”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베트남이 이기고 있잖아요!"기사가 흥분하며 대답했다. “베트남 축구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박항서 감독이 있잖아요!”
그날 SBS가 중계한 베트남 대 말레이시아 스즈키컵 축구 결승 2차전 시청률이 18%를 넘었다고 한다. 멀리 떨어진 하노이에서 열린 축구 경기, 한국 팀이 참가한 경기도 아닌데 이런 광적인 시청률이 나오다니 놀랍다. 베트남이 우승한 순간, 3000㎞ 거리를 두고 베트남과 한국 국민들이 동시에 환호를 질렀던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박항서 매직(魔力)’뿐인 것 같다.
박항서는 9500만 베트남인의 ‘국민영웅’이 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박항세오’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마 그의 이름 영문표기가 ‘Park Hang Seo'라서 그런 것 같다. 베트남인들은 ’박항세오‘를 연호하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그는 혼이 나갈 정도로 베트남 국민의 열광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나이 많은 한국인에게 남은 박항서의 이미지는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 때 히딩크 감독과 선수 사이를 열심히 오락가락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던 부지런한 코치의 이미지였다. 그는 선수였지만 스타플레이어도 아니었고, 돋보이는 감독도 아니었다. 누군가를 열심히 뛰게 만드는 동네아저씨 같은 이미지가 박항서 마력의 요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항서 매직에서 관심을 끄는 게 있다면, 그건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형성되는 독특한 상호 인력(引力), 즉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다. 주 베트남 한국대사의 말마따나 박항서 감독은 어느 외교관도 정치인도 기업가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 한마디로 그는 한·베트남 친선의 촉매다.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해 박항서 감독은 양국 관계의 가교 역할을 훌륭히 한 셈이다.
현재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는 지극히 활발하다. 베트남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2 수출국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한국은 베트남에 570억달러를 투자한 직접투자 1위 국가다. 전자 철강 섬유 등 5500개 업체가 베트남에 진출했다. 베트남과 한국은 긴요한 경제 파트너가 되었다.
마력의 요체는 동네아저씨 이미지
한국이 참전했던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거의 반세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마음엔 베트남이 아직도 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가난한 나라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한국의 기준으로 보면 베트남은 아직 가난하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GDP)이 3만달러인데 비해 베트남은 2500달러에 머물고 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개혁개방 정책이 중국에 크게 뒤졌지만, 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개혁) 정책을 내걸고 시장경제체제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작년 경제성장률은 6.7%였다.
한·베트남 관계에서 아주 특징적이고 소망스러운 것은 베트남이 한국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한국은 과거 베트남 전쟁 참전국가로서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 문제에 관대하다는 것이다. 그 관용의 근원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미국 중국을 상대로 치른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다는 자부심에서 나온다는 분석이 있다. 그들은 한국을 바라보며 과거보다는 미래에 더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베트남은 한국의 좋은 경제적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베트남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국토와 인구가 작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잘 산다는 것, 한국과는 안보적 갈등이 없다는 것, 중국보다 편안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이 한국을 보는 베트남의 정서다.
유교문화권이라는 점도 양국이 공유하는 문화코드다. 베트남 전쟁이 만든 특별한 인연이 계기가 되어 인적 교류 문화가 오늘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베트남에는 이제 장년의 나이가 된 한국인 2세가 많다. 한국에는 베트남에서 일하러 온 노동자가 많다. 또 국제결혼으로 이주한 베트남 여성이 수만명 있고, 이들이 낳은 2세들이 한국 문화 한 부분으로 성장하고 있다. 2017년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은 약 17만명이다.
공통의 외교 고민, 중국 문제
고려 고종 때 대월국(大越國)왕자 이용상(李龍祥)이 고려에 망명해서 화산(花山) 이(李)씨 성을 받았고, 그 후손이 지금 남북한에 거주한다. 남한에만 2000명 정도 살고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베트남 정부가 이들에게 무척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이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이들을 중개로 베트남과 교류하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 절을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지금 한국과 베트남은 서로 좋은 것을 찾아가는 양상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공통의 외교 고민을 안고 있다. 중국 문제다. 두 나라 모두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날로 커지는 중국과 경제협력이 긴요해지는 한편, 정치 안보적 위협을 항상 느끼는 동병상련이다.
한국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동남아시아에서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 베트남의 전략적 가치는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한·베트남 관계에 박항서 매직은 더없이 소망스러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