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장수시대, 일하며 건강하게 산다는 것

구상낭 2024. 1. 2. 22:49

2018-11-26 11:41:37 게재

 

며칠 전 10여년 이상 다녔던 동네 단골 이발소에서 머리를 손질했다. 이발사는 일을 끝내고 요금을 받으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 가게 이용해줘서 고맙습니다. 문을 닫고 좀 쉬려고 합니다." 의자에 앉으면 "스타일대로 손질하겠습니다"라며 익숙하게 머리를 만지던 이발사에게 머리를 더 이상 맡길 수 없게 되니 뭔가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 젊은 이발사의 ‘쉬겠다’는 말에는 무슨 일이 있는가. 아파서 쉬려는 것일까, 아니면 남의 머리 깎는 일이 단조롭고 장래가 없다고 생각해서 접으려는 것일까. 한달에 한번 볼까말까 하는 이발사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얼마 전 외신에서 보았던 ‘107세 이발사’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시 근교에서 96년 동안 한 가지 일, 즉 이발만 해온 안소니 맨치넬리 영감은 1911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치면 108세다. 그 나이까지 사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인데, 평소처럼 일을 한다는 것이 경이롭다.

맨치넬리는 정오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8시간 이발을 한다. 그는 고용된 이발사다. 맨치넬리가 일하는 모습을 유튜브(U-tube)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안경도 쓰지 않고 가위질을 하는 손놀림이 믿지 못할 정도로 능숙하다.

의사들마저 그의 장수 비결을 알아보려 하지만 “동생들에게도 알려 주지 못한 비밀”이라고 응답한다. 7명의 형제가 다 죽었다는 뜻이다. 아내도 14년 전 타계했지만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자동차를 몰고 출근하고, 약 같은 것도 전혀 먹지 않는다. 빨래 등 집안일을 혼자 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어릴 때부터 먹어온 스파게티다.

그의 장수비결은 하늘만 아는 일인지 모르지만, 그의 말에서 얻을 수 있는 힌트는 ‘즐겁게 일하는 것’이다. 그는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발사 직업이 좋고 이발하러 오는 고객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내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난 것도 일에 몰두하면서 가능했다.

107세 이발사의 장수비결

맨치넬리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나 1919년 부모를 따라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의 가족은 부모와 8남매로,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11세 때 초등학교도 중퇴하고 신문 배달을 했지만 이발을 배우고 싶었다. 이발소 주인에게 부탁하여 허락을 얻은 후 두 가지 일을 했다. 아침엔 조간을, 오후엔 석간을 배달했고 저녁엔 이발소 일까지 했다. 그가 이발을 시작할 당시 이발료는 25센트(270원)였고, 지금 그가 받는 이발료는 17달러(1만9000원)이니 1세기에 걸친 돈 가치의 변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맨치넬리 이발사를 생각하다가 문득 99세인데도 팔팔하게 강의와 집필을 하는 김형석 연세대명예교수가 떠올랐다. 그 나이에 생각을 정리하고 말과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정말 초인적이 아닌가. 두 사람의 경력과 삶의 차원은 다르지만, 여생을 직업에 몰입하는 모습에서 우열을 가릴 일이 못된다고 느낀다. 그저 나이에 비례하여 기분 좋은 에너지의 강도를 느끼게 된다.

맨치넬리의 이야기는 아주 희귀한 사례여서 단순한 흥밋거리이기도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은 올해 65세 이상 되는 사람이 인구의 14%를 넘어서서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평균 수명은 남자 80세, 여자 84세이다. 어느 모로 보다 한국은 장수 사회로 변화했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의료서비스의 고도화로 기대 수명은 갈수록 길어질 것이다. 오래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로 볼 때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장수 사회로 파생될 사회경제적 문제는 예측하기 힘들다.

고령사회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 얼마나 많은 고령 인구가 건강하게 여생을 보내며 본인과 가족의 행복을 유지하느냐이다. 둘째, 될수록 많은 노령 인구가 사회 경제적 생산 활동으로 자신, 가족, 사회에 기여하게 할 수 있느냐이다. 사람이 생각처럼 다 건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 정부의 정교한 국민건강 정책에 의해 고령인구의 건강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팔팔하게 강의 집필하는 99세 김형석 교수

또 하나 고령자의 건강한 삶을 견인하는 것이 나이가 들더라도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이 아니라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일은 소득을 유발해서 본인과 가족의 생계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방법의 하나다. 이건 본인의 의지와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가의 사회경제 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장수하는 사람이라고 모두가 미국 뉴욕의 맨치넬리 이발사나 김형석 교수처럼 직업에 몰두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나 가족 또는 국가의 배려에 의해 생각보다 오래 일하고, 또 그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형석 교수 경우보다는 맨치넬리 이발사처럼 육체노동 또는 기능성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장수하며 일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싶다.

정부가 정책을 잘 수립하면 고령자가 더 오래 일하는 분위기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건전한 고령사회는 일하는 80대가 많은 공동체가 아닐까 상상해본다. 81세 아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107세 맨치넬리 이발사의 모습에서 장수 사회의 긍정적 측면을 찾아보게 된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