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들이 뿔난 이유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선 데모가 많다. 노동자데모, 미투데모, 탈원전 반대 데모, 농민시위, 촛불시위 그리고 태극기 집회 등등 셀 수 없다. 학생데모는 오히려 고전적이다. 데모는 정책당국을 향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리 지르기’다.
최근에 벌어진 데모 중에 눈에 띄는 건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시위다. 지난 달 2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데도 수천 명의 소상공인들이 몰려들어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날 소상공인들의 비판 대상이 된 정부정책은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세트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소득양극화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은 어느 정부에게도 피할 수 없는 과제라 하겠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16.4% 올랐고, 2019년엔 8,350원으로 10.9% 인상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9%나 뛰는 셈이다. 경기가 좋지 않는 상황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타격을 크게 받는 것은 자영업자들이다.
대개 종업원 10인 미만을 고용하는 소상공인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에는 자영업자가 약 570만 명 쯤 된다. 이들은 남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들과는 달리 웬만해선 정부에 대드는 집단행동을 꺼린다. 인·허가와 고용문제 등 까다로운 행정의 규제와 감시를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영업자들이 데모에 나선다는 것은 그들의 사업 환경이 매우 악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2000년 임금근로자들과 자영업자들의 평균소득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2017년 임금 근로자들의 평균소득은 3,840만원었지만 자영업자는 2,240만원으로 크게 격차가 벌어졌다. 여기다 설상가상으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겹치며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따라서 소득주도 성장을 경제 정책의 금과옥조로 삼고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2년째 밀어 부쳐온 문재인 정부로서는 이들의 외침에 큰 통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업 환경 나빠지는 이유 정책에서 찾아
이런 맥락에서 지난 10일부터 내일신문이 4회에 걸쳐 연재한 ‘자영업자가 뿔났다’는 특별기획 기사는 정부의 자영업자 정책의 수립 및 실행과 관련하여 경종과 숙제를 던지고 있다. 내일신문과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가 공동기획하고 한국리서치가 1,000명의 수도권 자영업자(종업원10인미만)를 무작위 추출하여 전화·면접해서 작성한 ‘2018년 자영업자 정치인식조사’는 생생하면서도 정제된 현장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특히 1,000명의 응답자 중 272명은 2017년에 같은 조사에 응했던 자영업자들이어서, 문재인 정부 1년차와 2년차를 비교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평가의 지표로도 활용될 만하다.
이 ‘자영업자정치인식조사’의 결과에서 가장 돋보인 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 자영업자들이 사업 환경이 나빠지는 이유를 경기보다 정책에서 찾았고, 둘째 급격한 최저임금인상이 문재인 정부의 자영업자 정책 전체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덧칠한다는 점이다.
자영업자의 사업 환경이 나빠진 이유로 경기를 탓하는 응답자가 49.9%였다. 작년의 64.6%보다는 무려 14.7%가 줄어들었다. 또 잘못된 정부정책 때문에 사업 환경이 나빠졌다는 응답은 작년 21.9%에서 올해 28.5%로 6.6% 늘어났다. 경쟁업체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응답도 작년1.7%에서 올해 14.6%로 12.9% 뛰었다. 정부의 자영업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족도는 2017년 61.2%에서 올해 72.3%로 12.1% 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정책평가에 유보적인 자영업자들이 대거 비판 쪽으로 돌아섰다는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의 분석이 의미가 크다.
정부는 카드수수료 인하와 상가임대차 보호 등 직접적인 자영업보호 정책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정부의 정책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런 부정적인 영향이 나왔을까. ‘정치인식조사’는 ‘최저임금 이슈’가 자영업자의 뇌리에 부정적 이미지를 박아놓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정책 전체를 부정적 이미지로 덧칠
자영업자들은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 8,350원으로 인상한 것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잘못했다“는 대답은 54.1%였고, ”잘했다“는 응답은 40.8%였다.
자영업자가 최저임금에 얼마나 민감한지는 종업원이 없는 1인 자영업자의 51.8%가 ”잘못했다“고 답한 사실에서 알아볼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 결정이후 쏟아지는 비판여론에 대해 정부·여당은 1인 자영업자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자영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다고 주장한 것이 결과적으로 잘못 짚었음을 말해준다. 1인 자영업자라 해도 급하면 알바를 구해 써야 하고, 장차 사업 확장의 꿈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자영업자의 지지율 37.9%였다. 비슷한 시기 다른 여론조사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조사했을 때의 40% 후반 보다 훨씬 더 낮다. 이쯤 되면 자영업자들이 ‘뿔났다’는 표현이 설득력이 있다.
정부는 임대차보호 정책과 카드수수료 인하 등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보완대책 시행했다. 그러나 디테일한 자영업자 대책을 체계 있게 세우지 못한 값을 치르고 있다.
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