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탈원전, 디테일이 필요하다

구상낭 2023. 6. 5. 23:04

2017-08-03 11:25:28 게재

 

앞으로 에너지 정책 수립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요인은 환경이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잠재적 재앙이며, 미세먼지는 세계 대도시가 경험하는 고통이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의 진원지가 화석연료다. 원자력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배출하지 않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러나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에서 보았듯이, 원전은 방사능누출 폭발사고와 사용후핵연료 처리 같은 안전성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은 원자로 밀집도로 비추어 볼 때 의심의 여지가 없는 원전 국가다. 그런데 국민 경제 생활에 그지없이 중요한 에너지 정책이 지금 변곡점에 서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탈핵 시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21세기 후반기에 '원전제로' 사회를 만들겠는 목표와 함께 계획 중인 신규 원전 건설은 포기한다고 밝혔다.

또 공정률 28%인 신고리 5, 6호기 건설공사 계속 여부를 공론화위원회에 의한 시민배심원단에서 수렴된 의견에 따라 결정한다고 밝혔다. 지금 탈원전 정책은 국민적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원자력 산업계와 학계의 반발이 물론 크지만 국민 여론도 찬반으로 팽팽하게 갈려 있는 듯하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많은 사람들은 원전에 대한 잠재적 위험을 크게 느끼는 게 사실이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원전이 밀집되어 있는 영남 해안지역 주민들은 원전의 안정성 문제에 민감하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구상은 이런 국민적 정서를 업고 에너지 정책이 효율성이 아니라 안전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데 기초를 두고 있다. 심정적으로 탈원전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고 진보정권 정책이어서 무조건 지지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한편 탈원전 정책을 불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과연 햇볕과 바람이 속속 폐쇄되는 원전을 대신할 수 있을까, 블랙아웃 사태의 발생이나 전기료의 인상은 누구나 생각하는 걱정거리다. 재생에너지는 어마어마한 토지 및 개발비용을 필요로 하고 또 다른 환경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탈원전' 불안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무시할 수 없는 게 기존 원자력계와 과학기술계의 경제적 사회적 박탈감이다. 한국의 원전기술은 거의 반세기에 걸쳐 축적되고 개발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탈원전 정책으로 연구개발 능력은 사장되고, 그 많은 원자력 공학자와 기술 인력들은 다 어디로 가야 하며, 대학에서 원자력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은 장래 무엇을 해냐 하나. 원자력 산업 및 과학기술계 사람들이 안고 있는 반발심이자 고민이다.

지금 논쟁의 초점은 전반적인 탈원전 정책보다는 신고리 5, 6호기 공사 여부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과정에 쏠려 있다.

많은 얘기가 나돈다. 정부의 기획된 공사중단 의도가 숨겨있다든가, 대통령이 결정해야 할 이슈를 국민여론에 떠맡기려 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이 있다. 5, 6호기 공론수렴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민은 에너지정책에 대한 정부의 신뢰도에 대해 점수를 매길 것이다.

따라서 공론화위원회가 중립성을 유지하며 디테일하게 원전의 장점과 단점, 유용성과 위험성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시민배심원단을 포함한 국민에게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에너지원에 대한 환경, 안전, 경제성, 대체성, 지속성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을 종합해서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즉 최적의 에너지원 배합(MIX)을 국민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원자력과 석탄발전은 나쁘다"느니 "재생 에너지는 좋다"는 식의 단순한 이분법적 평가를 할 시점은 아니다. 에너지 추세는 화석연료에서 재생 에너지로 옮겨가는 중이며 그 중간에 원자력이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용적 프로그램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민주국가에서 모든 정책이 그렇겠지만, 탈원전 정책의 요체는 국민의 수용 여부에 달려 있다.

5년 후 정권이 바뀌면 많은 정책이 바뀔 것이다. 국민이 수용할 수 없는 에너지 정책은 그때 가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 혼선과 파장은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에너지 정책을 맡은 장관이 "전기 값이 전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라고 호언하는 것은 좀 무책임해 보인다. 물론 이미 증설된 원자력발전과 화력발전으로 예비전력이 충분한 마당에 큰 이윤을 내는 한전을 압박하면 몇년 동안은 전기료를 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원전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바람과 햇볕으로 전기를 생산할 때 전기료 예측을 해달라는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건강하게 지속되려면 재생 에너지에 대한 교과서적 지식이 아니라, 실용적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디테일이 중요하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