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고기 좀 덜 먹읍시다

구상낭 2022. 11. 8. 12:38

내일신문 2011-01-08 21:14:29

 

구제역 비상사태다. 경기도에 돼지 농장을 갖고 있는 친구가 얼마 전에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아 등골이 땀에 젖어 있다.”고 말했다.

 

‘구제역’, 병명도 어렵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발굽이 2개인 소ㆍ돼지 등의 입과 발굽 주변에 물집이 생긴 뒤 치사율이 5∼55%에 달하는 가축의 제1종 바이러스성 법정 전염병’이라고 적혀 있다. 영어로는 ‘foot-and-mouth disease’이다. 입과 발에 병이 붙는 것임을 금세 짐작할 수 있다. 1897년 유럽에서 처음 그 바이러스를 확인했으니, 한문을 쓰는 일본 사람이나 중국 사람들이 입을 의미하는 ‘口’, 발굽을 의미하는 ‘蹄’, 돌림병을 뜻하는 ‘疫’을 조합해서 쉽게 말을 만들었을 법하다.

 

어쨌든 구제역 뉴스로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이 뒤숭숭하다. 어김없이 정치적 공방이 오간다. 정부 실정의 꼬투리를 잡을 기회만 포착하는 야당에겐 절호의 기회다. 입장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격적이라고 하는데, 우리 정치 문화도 그 육식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바이러스를 막으려는 것은 애초부터 과한 욕심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다른 방향에서 구제역 파동을 바라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육식에 대한 조그만 반성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인간이 잘살게 되면서 잘 먹게 되고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 육식 문화의 번창이다.

 

우리나라에 육식이 본격 시작되고 20여년이 지난 후 사람들은 건강해진 것일까. 우선 영양실조가 사라졌다. 어린이들은 키가 커지고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는 등 서양인의 체형을 닮아간다고 한다. 그렇게 닮고 싶은 백인의 체형으로 변하니 만족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과다한 영양섭취, 특히 육식에 의한 건강 문제가 심각하다는 연구결과가 끊임없이 나온다.

 

우리는 지금 송아지와 어린 돼지를 즐겨 잡아먹는다. 닭도 영계만 선호한다.

사실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살지 않았다. 송아지를 잡아먹지 않았다. 새끼는 그만큼 미래를 위해 중요한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일하고 새끼 낳고 젊을 때 노동력을 제공하고 죽어서는 주인에게 고기와 가죽을 남겼다. 사람들은 암탉이 낳은 달걀을 먹거나 팔아 생계에 보탰고 늙으면 잡아먹었다. 가축의 생명 주기를 존중했고, 사육 방식도 자연 방사였다. 소는 여름엔 목장의 풀을 먹고 겨울엔 꼴을 먹으며 자랐다. 농부는 소 한 마리의 특성을 가족처럼 파악하며 돌봤다. 한 폭의 동양화와 같았다.

 

육식이 일반화하면서 가축 사육 방식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비좁은 축사 에 수백 마리의 소와 수천 마리의 돼지를 기른다. 풀을 먹는 소는 거의 없다. 질 좋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수입 사료만 먹이고 운동을 시키지도 않는다. 역병이 돌면 몰사하니 그걸 막기 위해 예방적 차원에서 과다한 항생제를 먹인다.

 

서양에서는 이 같은 농업을 일컬어 ‘팩토리 팜’(factory farm)이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공장형 농장이다. 생명을 마치 제품 찍어내듯이 만드는 동물 공장이다. 유럽에서 발달해서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확산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좁은 국토에 5천만 명이 몰려 사는 한국에는 시골 어디를 가나 이런 동물 공장이 들어서 있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돌았다하면 전국이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인구가 밀집되고 이동이 심한 나라에서 바이러스를 막을 능력은 제한적이다.

 

5일 통계에 따르면 이번 구제역 파동으로 한우 9만 두를 포함 가축 80만여 마리가 살처분됐다. 안락사를 시키지 않고 살아 있는 동물을 땅속에 그냥 묻는다. 지게차에 실려 구덩이 속으로 내팽개치는 송아지의 발버둥치는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그대로 나온다. 반생명적인 대량 살생이다. 가축 주인도 그렇겠지만 이런 일에 가담하는 공무원과 노동자의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다.

 

동물 공장 자체가 굉장한 오염원이다. 게다가 이렇게 살 처분하면 땅 오염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동물의 똥과 오줌이 다시 비료가 되는 환경순환의 질서는 사라진지 오래다.

 

21세기 들어 우리는 광우병과 구제역 소동을 심각하게 경험하고 있다. 정부가 방역정책을 잘 펴는 것이 급하지만, 우리 국민이 더 근본적으로 생각할 문제는 절제된 육식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