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행원이 사라지는 은행

구상낭 2023. 4. 29. 11:40

2017-05-04 00:00:01 게재

 

은행원들에게 적잖이 충격적인 소식이었을 법하다. 그러나 그들은 충격을 느끼면서도 결코 자기에겐 현실이 되지 않을 일이라고 안도할지도 모른다. 마치 매일 뉴스에 나오는 교통사고 사망 소식을 끔찍하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은 사고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하듯이 말이다.

지난 3월 말 지점 80% 폐지를 발표한 한국시티은행 이야기다. 시티은행은 전국의 지점 126곳 중 101곳을 없앤다고 밝혔다. 이 뉴스를 보고 얼핏 떠오르는 생각은 그 많은 지점의 은행원들은 실업자가 되겠지 하는 추측이었다. 그러나 당장 고용에 변화가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시티은행측은 지점 폐쇄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시티은행의 개인 거래 중 대면(對面)거래, 즉 지점을 통하는 비율이 15%밖에 되지 않아서 지점활용과 고용문제를 고민하게 되었다." 폐쇄되는 지점의 행원들은 '고객가치센터'로 간다고 한다. 고객가치센터는 금융상품상담과 판매를 담당하고, 고객이 전통적 영업점 채널에서 벗어나 모바일, 인터넷 등 디지털 채널로 은행 일을 볼 수 있게 돕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정규 은행 직원을 콜 센터로 보내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과연 시티은행은 지점 101곳을 폐쇄한 후 그곳 직원 모두의 고용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시티은행 CEO 박진회 행장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4차산업혁명과 핀테크 쓰나미가 밀려오는 상황에서 이대로는 생존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나오는 등 디지털 트렌드가 강하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 위기감이 들었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 과거에 지점 창구에 은행원들이 즐비했던 시티은행의 모습은 곧 사라질 것이다.

"지점 126곳 중 101곳 폐쇄" 발표

이건 구조조정 차원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다. 시티은행의 지점 80% 폐쇄는 4차산업혁명이 구체적으로 우리 가까이에 들이닥친 사례로 보아야 한다. 기존 은행은 지점을 폐쇄하지만 새로 생긴 K뱅크는 아예 지점 없이 영업을 시작했다. 온라인으로만 고객이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인터넷 전문은행이 등장한 것이다.

K뱅크는 4월 3일 영업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가입자 20만명을 확보했고, 예금액 2300억원, 대출액 1300억원을 기록했다. 개인에게 가장 중요시되는 현금을 인터넷 은행 계좌에 덥석 이체하는 사람이 보름동안 20만 명이 생겼다는 건 전통적인 은행창구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놀라운 심리 변화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건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얼마나 사회를 깊숙이 지배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가입자가 가장 많은 연령대는 30대로 총가입자의 39%이다. 다음으로 가입자가 많은 연령대 순으로 보면 40대의 31%, 20대 17%, 50대 11%이다. 60대 이상은 2%밖에 안 된다. 가장 경제활동이 활발하고 소득도 비교적 안정된 30대와 40대 가입자가 70%를 차지하는 것은 인터넷 은행의 미래를 암시한다. 이들은 점포에 찾아가지 않고 하루 24시간 아무 때나 예금과 대출 등 은행 일을 인터넷을 통해 처리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PC나 스마트폰이다.

K뱅크에 이어 카카오뱅크도 곧 등장하면 이들이 경쟁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더욱 편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시티은행장이 느끼는 위기를 이해할 만하다. 일반 시중은행은 모두 500곳 이상의 지점을 가지고 있어서 고민은 훨씬 더 클 듯싶다. 2016년 기준 은행 임직원 수는 11만4775명, 영업점은 7103곳이다. 이 수치는 2015년보다 인원은 2248명, 영업점은 175곳 줄어든 것이라고 한다. 보수적이고 변화의 속도가 느린 은행이 얼마나 심한 변화의 압박을 받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붕괴되는 일자리 문제 고민해야

은행원은 전형적인 화이트칼러 직업인이다. 수입이 좋고 사회적 평판이 높은 '좋은 일자리'로 대학 졸업자 대부분이 한 번씩 생각해보는 직종이다. 은행 지점은 행원들의 일자리일 뿐 아니라 지점 골목 또는 거리의 상권 형성에 큰 몫을 한다.

4차산업혁명이 시대적 화두가 되면서 대통령후보마다 4차산업혁명 관련 공약을 내세웠다. 4차산업혁명에서 국민을 먹여 살릴 대단한 먹거리가 있는 양 목청을 높인다. 인공지능, 로봇, 3D프린트, 드론, 생명공학이 가져올 미래가 맛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기대감 못지않게 4차산업혁명의 역풍도 거세다. 지점이 없고 행원이 없는 은행, 이게 4차산업혁명이 만들어 낼 금융 산업의 얼굴이다. 오는 9일 선출되는 대통령은 4차산업혁명이 초래할 산업발전에 고무되기보다 붕괴되는 일자리 문제로 더 고민하게 될 것이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