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정경유착 수술 기회다

구상낭 2023. 4. 26. 23:18

2017-03-08 11:33:12 게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재벌 기업들의 로비 단체로 지난 50년간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력을 발휘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존재의 위기에 놓였다. 감옥엔 안 갔지만 다른 재벌 총수들도 마음은 가시밭에 앉은 기분일 것이다. 기업들은 탄핵정국에 의한 정치적 혼돈과 경제 불황 속에서 4차산업혁명의 혁신 요구에 직면해 있다. 기업들은 풀이 죽어 있다.

요즘 일부 언론에선 국민의 반-기업정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하는 논평을 쏟아내고 있다. 어느 경제일간지 TV채널이 지난달 하순 성인 1039명을 대상으로 '반기업정서 대국민설문조사'를 실시해서 발표했는데, 기업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에 55.1%가 '부정적'이라고 답했고, '좋다'는 답은 34.1%가 나왔다고 한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86.3%가 기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기업에 대한 인식의 나쁜 정도가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다.

기업에 부정적 인식을 보인 응답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50,7%가 '윤리성 부족'을, 21.8%가 '투자 및 고용 미흡'을, 20.4%가 '사회공헌 부족'을 꼽았다. 한국은 국민총생산(GDP) 규모에서 세계 11위 국가다. 이런 성장을 이루는 데 재벌 기업들의 공이 컸던 것을 부인할 수 없는데도 기업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기는커녕 반-기업 정서에 직면했으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조사를 수행한 언론이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어 그 원인을 진단한 결과가 흥미롭다. 큰 이유는 두 가지다. '정경유착 및 재발 2,3세의 비도덕적 행태'와 '격변기(선거)마다 반복되는 정치권의 기업 때리기'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정경유착은 표면적인 것이고 정치권의 기업때리기가 더 뿌리 깊은 원인이라고 규정했다. 두 원인의 경중을 가리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 반기업정서 심각한 수준

여기서 어느 편이 더 반기업정서를 키우느냐고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으로 흐르게 된다. 그런 논쟁보다는 기업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존재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를 맞고 있다는 데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그저께 박영수 특별검사가 소위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에 대한 90일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TV에서 박 특검의 발표문을 들었을 때 귓전을 때리는 말은 "특검 수사 핵심 대상은 국가권력이 사적이익을 위해 남용된 국정농단과 우리 사회의 고질적 부패 고리인 정경유착"이라는 배경 설명이었다.

그리고 박 특검의 입에서 이어지는 말은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회사자금을 횡령하여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뇌물을 공여하고..."라는 범죄 혐의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을 정경유착의 핵심고리로 보는 발표였다.

특검수사에 상관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은 곧 탄핵심판에 따라 결정된다. 인용되든 기각되든 정치적 파장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운명은 특검에 의해 기소된 형사재판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미 총수 구속과 미래전략실 폐쇄로 58년 동안 선단식 경영을 해온 삼성 그룹은 격랑 위에 흔들리고 있다. 일부 언론은 총수 구속과 미래전략실 해체가 우리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삼성 재벌의 연간 매출액은 약 3000억 달러이고 종업원은 30만명이다. 삼성 계열 59개사의 시가총액은 증권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약 30%이다. 이들 수치만 봐도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삼성 재벌의 비중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경제규모와 맞먹는 삼성

세계 200여 국가의 국민총생산(GDP)을 순서대로 세우면 말레이시아가 3027억 달러로 세계 37위가 된다. 국토가 남한의 3배가 넘고 인구가 3100만명이나 되는 말레이시아의 경제규모와 맞먹는 삼성 재벌이다. 삼성은 이 경제력을 갖고 한국의 정치, 미디어, 문화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게 사실이다.

한편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삼성은 한국의 경쟁력을 상징하는 글로벌 대기업이다. 따라서 당장 국가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최순실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하여 삼성 그룹이 안고 있는 환란은 이유 없는 걱정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존재로 거듭나려면 이 기회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잘라내야 한다.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아픔이 있지만 공정한 법질서와 사회정의를 위해서도 권력과 기업의 부패 고리를 대놓고 끊는 수술을 해야 할 때이다. 그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길이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