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권한대행 황교안? 대권주자 황교안?

구상낭 2023. 4. 26. 23:15

2017-02-20 11:23:3

열흘간 제주도 애월 바닷가에서 지냈다. 북서풍 몰아치는 시골 해변에서 신문도,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접하질 않으니, 지난 해 10월부터 불이 지펴진 국정농단 사태가 집채 같은 파도와 함께 떠나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난 주말 서울의 일상으로 돌아오자 신문과 방송이 쏟아내는 뉴스가 나를 포위했다. 내가 적극적으로 모든 현안에 눈을 감고, 귀를 닫지 않는 이상 현재 정국 상태, 그리고 국제정세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온몸으로 체험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김정남 암살로 북핵을 중심으로 하는 6자간 관계는 더욱 복잡해지고 주변인들을 긴장에 빠트렸으며,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해 이 사건 역시 뉴욕타임스 등 세계 언론의 빅뉴스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증시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재판과 관련해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은 헌법재판소에 이번 24일로 일정이 잡힌 최종변론기일을 3월 2, 3일로 연기해 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최종심판을 조금이라도 미루려는 재판전략으로 보이지만, 핵폭탄 급 심판의 날은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 대면조사를 둘러싼 특검과 청와대의 기 싸움이 계속되는 와중에 28일이면 특검활동기간이 만료된다. 특검은 활동기간을 연장해주도록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에게 요청했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자신을 임명해준 대통령을 겨냥한 특검의 요청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의 선택의 순간을 맞고 있다. 국민적 관심과 열망을 생각할 때 특검활동기간 연장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게 변화했다.

바로 황교안 권한대행의 대통령선거 후보 가능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60일내에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한다. 여권과 보수 세력은 이렇다 할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앞 다투어 황교안 권한대행을 대안으로 추켜세우고 있고, 여론조사에서도 야금야금 지지율이 올라가는 상황 속에서 황교안 권한대행도 이런 움직임에 싫지만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국민들은 특검 활동기한 연장 원해

하지만 황교안 권한대행은 지금 대권후보에 곁눈질 할 때가 아니고 권한대행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온 마음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대통령에 대한 특검수사 및 탄핵재판과 대통령선거를 동시에 치르고 있다. 박근혜는 권력이 정지되었을 뿐이지 아직은 현직 대통령이지만, 정치권에서는 그의 존재를 잊어버린 듯하다.

대통령선거가 시작되기는커녕 시작할지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는데 유력후보들이 공약을 제시하는 등 사실상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대권선언을 했다가 포기한 사람만 여러명 나왔고, 문재인 전 민주당대표가 압도적 선두로 나서고 안희정 충남지사가 괄목하게 2위로 치고 올라서면서 여론조사결과가 국민적 초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 국면에서 권력의 조명을 받는 사람이라면 틈만 나면 곁눈질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박근혜-최순실 스캔들은 한국 정치리더십의 저질성, 무능함, 탐욕스러움과 부패함을 뿌리째 드러냈다. "한국엔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330명이 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국무총리에서 물러나라고 문자로 통보를 받아서 권력의 끝을 만났다가 트럼프의 전화를 받아 한미관계를 논하고자 한다면 지금 이 임시적인 권력을 확실한 권력으로 만들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황교안 권한대행은 말 그대로 '권한대행'에 불과하다. 설령 국민의 대다수가 박근혜의 퇴진을 외치더라도 그는 국민이 뽑아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 국가기관이고, 국무총리는 대통령에게 임명된 고위공무원으로 민주적 정당성은 없다.

독단적 일 처리는 헌법정신 위반

그가 대행하는 권한은 '현재 사태를 최대한 유지'하는 데 그칠 뿐, 국민 다수의 추대를 받지도 못한 국무총리가 적극적인 행정행위를 하며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헌법원칙에 위배된다. 황 권한대행은 '벚꽃 선거'에 어필할 수 있는 큰 공을 세우면 안되는 것이 정치적 요청이 아니라 헌법상의 요청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한국은 지금 위기의 표류선이고 황교안 권한대행은 그 배의 임시 선장으로서 다음 선장에게 핸들을 전달하기 전까지 좌초를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이 많다. 북핵위기, 트럼프위기, 경제위기, 민주주의 리더십 위기가 한꺼번에 몰려들고 있다.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그 엄청난 후유증은 표류선이 감당하기 벅찬 짐이 될 것이다. 한 손으로 키를 잡고 한 손으로 파손된 선체로 흘러드는 물을 퍼내야 한다. 자신을 던지지 않고 배를 구할 수 없다.

그런데 현재 자신에게 요구된 역할보다는 자신이 선장이 되는 방법만을 강구한다면, 박근혜가 보여준 실질적인 4년 동안의 정권 공백상태를 극복하는 가교(架橋)마저 무너져버릴 것이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