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자유칼럼 2010-10-24 18:29:37
예외가 없지는 않겠지만, 아들을 가진 이 세상의 아버지는 그 아들을 향해 이렇게 희망할 것입니다.
“아들아, 내가 하던 일과 업을 계승해다오.”
“아들아, 절대로 이 아버지를 닮아서는 안 된다.”
첫 번째 희망을 가진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인정받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업을 가진 사람일 것이고, 두 번째 희망을 품은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는 권력승계 작업을 놓고 전 세계가 한탄을 합니다. 우리 언론도 조선시대 ‘세자책봉’에 비유하며 시대착오적 권력세습을 조롱하고 비판합니다. 60여 년 동안에 3대에 걸친 권력승계가 이뤄지고 있으니, 공산 독재국가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현대 국가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수백 년 거슬러 올라가 조선왕조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김정일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 보통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 갖는 생각의 발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김일성이 창업하고 자신이 핵무기까지 개발하며 구축해 놓은 절대 권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장차 그 일을 가장 믿음직스럽게 수행할 사람으로 3남 김정은을 택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아니라 북한에는 왕조가 현존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봉건시대가 아니지만 사람들은 성공의 척도로 권력과 재력을 통상 생각합니다. 권력을 잡아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거나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면 성공한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보통 ‘가문의 영광’이라는 수식어는 권력과 관련되어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아버지의 권력은 생각대로 아들에게 승계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나 권력자들도 아들이 자신의 직위를 승계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들의 의지가 보일 때 경험 많고 영향력 있는 아버지가 조언을 해주고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고 미국에서도 21세기에 부시 부자 대통령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정치인의 아들이 아버지의 공이나 이름을 활용하여 선거를 통해 그 자리를 계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아들의 정치적 역량이 선거에 효력을 발휘해서 되는 것이지 북한에서처럼 아버지의 의도대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아버지가 최고 권력을 아들에게 물려준 최근의 예는 싱가포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사실상 리콴유(李光耀)에 의해 창설됐고 한 때 고촉통 (吳作棟) 총리가 통치했지만 다시 리콴유의 아들 리센룽(李顯龍) 총리가 통치권을 쥐었습니다. 누가 생각해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줬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리콴유 부자는 싱가포르를 세계 최상의 비즈니스 국가로 올려놓음으로써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일생을 통해 하던 업을 잘 교육받고 준비해온 아들이 계승해서 발전시키는 예를 전문 직업 분야에서 많이 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화학 교수 킬링 부자가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아버지 찰스 킬링은 기후변화를 촉발하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처음 측정한 사람입니다. 그는 1958년부터 하와이의 마우나 로아 산에 있는 관측소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변화를 측정하여 유명한 킬링곡선을 고안해냈습니다. 비록 노벨상은 받지 못했지만 이산화탄소 농도의 변화를 측정해낸 업적은 괄목할 만합니다. 4년 전 그가 타계했을 때 뉴욕타임스는 신문 한 면을 할애하여 그의 부고 기사를 게재할 정도였으니까요.
아들 랠프 킬링도 아버지와 같은 대학과 연구소에서 대기 화학을 연구해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아버지가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측정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들은 공기 중의 산소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사실을 측정하여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남의 나라 얘기이지만 아버지의 업을 자질 있는 아들이 계승하여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참 보기에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정치 분야에서는 잘 적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북한 방송에 나온 28세의 청년 김정은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시대착오적인 김정일 체제와 북한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십니까. 한국의 미래가 걱정스럽지는 않았나요.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했을 때 남한에서는 북한이 곧 망할 듯 떠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을 상대로 내성을 키웠고 핵무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김정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김정은이 물려받을 북한은 극도로 가난하고 굶주린 백성들로 가득 찬 나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머지않아 권력을 승계한다면 핵무기 버튼을 손에 쥔 청년 독재자가 출현한다는 엄연한 현실에 직면할 것입니다.
북한의 아버지와 아들, 그들을 상대해야 할 우리의 앞날이 만만치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