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변태하고 싶다"
내일신문 2016-07-07 12:39:39
삼성전자가 움직이면 뉴스가 된다. 삼성전자의 신제품 출시, 매출액, 순익 등과 같은 회사 정보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 소비자와 투자자의 관심거리다. 삼성전자의 사원 채용방식, 연봉, 주요 임원 동향은 국내 미디어의 취재거리이다. 특히 최고경영자(CEO)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은 일반 국민들이 입에 올리기 좋아하는 가십거리다.
그 삼성전자가 또 한 번 변신의 신호를 보냈다. 열흘 전쯤 삼성전자는 ‘인사제도개선안’이란 걸 공표했다. 삼성전자가 하는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기업과 대학사회에 파급 영향이 크기에 사람들이 그 신호에 주목하고 있다.
신문에 요약한 개선안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무실에서 상사를 부를 때 ‘과장님’ 또는 ‘부장님’과 같이 직책을 부르지 않고 그냥 이름 뒤에 ‘님’, 예를 들면 ‘재용님’이라고 부른다. 영어 이름이 있으면 ‘톰’ 또는 ‘젭’ 식으로 부른다. 더운 여름엔 반바지를 입고 사무실에 나와도 좋다. 회의는 참석자를 최소로 줄이고 1시간 내로 짧게 한다. 결재 단계를 따라 순차적으로 올라가면서 보고하던 일을 결재 선상에 있는 상사에게 동시에 보고가 들어가도록 한다.
이 내용을 얼핏 보면 직장 분위기를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바꾸겠다는 뜻이 드러나 있다. 그동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다. 10여 년 전 ‘다음’ 등 1세대 IT 벤처 기업들은 조직문화를 이렇게 수평적 의사소통이 쉽게 만들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근래 창업한 IT 벤처 기업 사무실이 많은 판교나 구로 디지털 단지 등에 가면 심심치 않게 구경할 수 있는 사무실 공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일부 대기업도 부분적으로 이런 시도를 해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는 왜 이런 변신을 시도하는 것일까. 문외한으로서 정확히 알 수 없다. 한 신문이 보도한 삼성전자 고위 임원의 말은 “스타트업(창업)기업처럼 수평적인 기업문화를 조성해 직원들의 창의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삼성전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면 공감 가는 말인 것 같다. 삼성전자가 수평적 조직문화를 추구하는 것은 감당하기 벅차가는 몸무게를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한다. 일종의 위기의 탈출구로서 조직문화를 수평적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혁신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삼성전자는 매출액 200조원, 전 세계 80개국에 생산 및 판매 조직을 가진 종업원 30만 명(국내 10만 명)의 거대한 글로벌 IT기업이다. 경쟁은 치열하다. 앞서가는 미국 기업과 따라붙는 중국 기업 사이에서 숨 막히는 생존경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회사 임원들이라면 당연히 애플과 구글 같은 IT기업이 태어나고 성장해온 실리콘밸리의 기업조직과 생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창조적 인재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유연하게 협력해야 세계 최고를 만들 수 있고 지킬 수 있다. 실질적으로 사령탑을 맡은 이재용 부회장과 그 참모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대단할 것이다.
삼성전자의 변신 제스처는 몇 년 전에도 보였다. 빌딩 지하에 차고 비슷한 공간 방을 만들어 톱, 드릴, 드라이버 등 각종 공구를 비치하고,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컨테이너 박스 회의실을 세웠다. 직원들은 그곳에서 토론도 하고 사색도 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게 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창의적 공간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빌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꿈을 키운 곳도 시애틀 교외에 있는 아버지의 창고였고, 스티브잡스가 애플의 기업가 DNA를 받은 곳도 아버지의 차고였다.
이 차고 형 공간이 지금도 운영되는지 모르지만 이번에 내놓은 인사제도 개선안, 계급장 떼고 털어놓고 얘기해보자는 시도는 더 크고 본질적인 삼성의 고민, 기업문화의 혁신을 겨냥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어디서 IT산업의 다크호스가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혁신제품의 출현으로 경쟁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가닥을 잡을지도 모른다. IT역사는 어떤 선두 주자도 오랜 시간 안주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선두주자라기 보다 신기술의 훌륭한 추격자로서 성공해왔던 셈이다. 이것이 삼성전자 수뇌부의 마음속을 짓누르는 짐일 수 있다.
실리콘밸리가 IT기업의 요람이라는데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60년 굴뚝산업 문화의 전통을 가진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의 옷을 입는 것은 몸에 맞지 않아 어색할 수도 있다. “계급장 떼고 얘기해보자”는 스타일이 먹힐 때도 있지만 오히려 소통을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의 차고가 공구를 갖고 뭘 만드는 곳이라는 걸 느끼기도 했지만, 자동차를 고치면서 남이 안보는 곳도 철저히 닦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던 게 자신을 벤처기업가로 대성시켰다고 술회했다.
아무튼 삼성전자가 옛 영화의 성곽 속에서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변신을 꾀하는 것이 보기에 좋다. 그러나 이 변신이 실리콘밸리의 피상적 모방이 아니라 한국기업과 외국기업이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기업문화’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