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그룹

다시 뜨는 캄란만

구상낭 2022. 12. 24. 19:12

자유칼럼 2016-06-16 18:57:40

 

지난 5월 말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를 방문했습니다. 오바마 아시아 방문의 절정은 히로시마 방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히로시마 방문만큼 한국인의 주목을 못 받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또 다른 방문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베트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트란 따이 쾅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열었습니다.

미국-베트남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베트남에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베트남이 국가방위를 위해 원하는 전략적 물자 거래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우선 베트남 전쟁 이후 적국으로 간주해온 이 나라에 대한 무기금수 조치를 해제했습니다. 아울러 보잉사 제작 항공기 100대를 베트남이 수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베트남 민간항공회사가 필요로 하는 플랫앤휘트니 제작 항공기 엔진 150대 분의 수입 요구를 허용했습니다.

이런 전략물자 공급 허용은 두말할 필요 없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속셈을 깔고 있습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은 이 같은 조치를 설명하면서 미국-베트남의 정상 관계를 강조했을 뿐 그 전략적 함의를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국-베트남 정상회담을 보도하는 뉴욕타임스가 살짝 내비치기만 한 뉴스 한 토막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런 미국의 무기금수조치 해제에 상응하는 베트남 측 반대급부가 있었다는 겁니다. 미국 군함의 캄란만 사용 허용 논의가 무르익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캄란만(灣). 요즘 40대 이하 한국인에겐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지명입니다. 그러나 월남전 파병을 기억하는 50대 이상 한국인들은 이 지명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캄란만은 호치밍(옛 사이공)시로부터 300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항구이자 해군기지입니다. 수심이 깊고 내륙 깊숙이 위치하고 있어 베트남 전쟁이 치열하던 1970년을 전후해서는 미군의 전략 요충지였고 이런 연고로 한국의 청룡부대가 그 인근에 주둔하면서 한국 군함이 이곳을 드나들었습니다. 종전이 되던 1975년까지 국내 신문엔 ‘캄란만’이란 말이 실리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제 와서 캄란만이 관심을 다시 끌게 된 것은 남중국해의 영토분쟁 때문입니다. 중국이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해군력을 증강하며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영유권 주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인도차이나 반도 깊숙이 내려온 파라셀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가 하면, 필리핀과 인접한 스프틀레이 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합니다. 최근엔 이들 섬의 암초위에 인공 섬을 만들고 비행기 활주로를 건설하는 등 남중국해를 마치 내해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중국의 이런 조치에 남중국해 연안국가인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 안보위협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잠재적 위협으로 생각하는 미국과 일본이 제동을 걸기 위해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남중국해가 새로운 분쟁 도화선으로 떠오르는 최근의 상황입니다.

캄란만은 바로 파라셀군도나 스프래틀리군도에서 약 40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인도차이나의 요새입니다. 이 기지가 미국이나 일본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중국으로서는 남중국해 제해권 확보에 껄끄러운 일입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이념이 비슷한 이웃국가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적잖은 대립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위협을 받는다는 잠재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2차대전 후 베트남과 미국은 전쟁을 치르면서 적대관계에 있었지만 종전 후 40년이 흐르면서 국교정상화를 했고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안보측면에서 보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데 공감대가 있습니다.

중국은 영토가 한국의 100배가 되는 대륙국가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같은 세계국가를 꿈꿉니다. 해양세력으로 크고 싶습니다. 미국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끼고 있는 것과 달리 중국의 바다는 한국 일본 대만으로 둘러싸인 동중국해와 대만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로 둘러싸인 남중국해로 비교적 협소합니다. 두 바다를 합쳐도 약 500만 평방킬로미터로 중국국토의 절반 수준입니다. 중국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제해권을 배타적으로 갖기를 갈망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남중국해는 중국이 마음대로 이용하기에는 벅찬 존재입니다. 말라카해협을 통해 인도양과 연결되는 남중국해는 중국은 물론 일본, 한국, 대만, 필리핀, 베트남으로 막대한 석유와 상품이 운송되는 수송로입니다. 이들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고 따라서 미국으로서도 양보하기 어려운 요로입니다.

이미 필리핀 수빅만의 군사적 사용을 회복한 미국이 베트남의 캄란만 기지 사용권을 획득한다면 남중국해에서의 미국의 작전능력은 배가되는 것입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중국의 전략적 용어가 있습니다. 적국을 제어하기 위해 또 다른 적국을 이용한다는 뜻입니다. 원래 중국의 옛 방위전술이었지만 지금 서태평양에서는 거꾸로 미국이 이 전법을 쓰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이 베트남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남중국해의 미국 제해권을 지키려는 것이나 베트남이 캄란만을 제공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하는 것은 모두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핵탄두 미사일 시대를 살고 있지만, 캄란만 요새의 쓰임새가 다시 대두되는 것을 보면서 제해(制海)의 중요성이 살아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