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유가 결정론
내일신문 2016-03-04 23:21:21
석유 값은 예측이 어려운 괴물이다. 2년 전 석유 값은 배럴당 100달러가 넘었다. 지금은 30달러 내외다. 값이 70퍼센트나 폭락했다. 나라 살림을 석유 수출에 의존해온 나라들이 줄줄이 재정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오일 달러로 그때그때 국민에게 선심을 쓰며 정권을 유지해왔던 베네수엘라는 재정 파탄에 이르렀다. 중동의 산유국들, 러시아, 나이제리아 등도 골병이 들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아랍 제일의 부자 나라, 사우디는 어떨까? 옛날 통하던 국가경제의 산수(算數)가 통하지 않는다. 쌓아둔 오일달러로 축나는 재정적자를 막자니 힘이 쭉쭉 빠지고 있다.
사우디 정부의 재정 수입의 90%가 석유에서 나온다. 석유 1배럴을 팔아 100달러의 수입이 생기던 것이 30달러로 줄어들었으니 사정은 너무 훤하다. 정부 예산이 뭉텅 잘려나가자 정부사업 연기나 예산지출 제한 등 긴축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은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심지어 세금 부과나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지분 매각 얘기마저 나오는 판이다.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사우디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이슬람 왕정이다. 사우디 왕실은 국민에게 무료 교육과 무료 의료서비스에 넉넉한 에너지 보조금을 제공한다. 세금도 없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후한 봉급의 정부 일자리를 준다. 유독 청년 인구가 많은 사우디는 이들 취업 인력의 70%를 공무원으로 채용한다. 이런 복지 정책과 청년 취업이 사회 안정의 기반으로 사우디 왕실과 국민 간에 존재하는 묵시적 계약이다. 석유 값 폭락의 장기화로 이 메커니즘이 불안해지면 사우디 왕정의 안위도 위험해질 것이다.
우리는 석유 값 인상을 만병의 근원으로 생각해왔다. 석유 값이 하락하면 경제가 술술 풀릴 것으로 생각해왔다. 40년간 우리의 의식이 이렇게 굳어져 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동차 연료비가 뚝 떨어졌고 비행기 유류 할증료가 없어지는 등 유가 하락의 긍정적 측면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가하락이 경제의 침체를 불러오고 있다고 지적한다. 석유 값 하락은 산유국 비산유국 할 것 없이 세계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다. 고유가에 적응하며 돌아가던 산업 경제 시스템이 유가 폭락으로 역(逆)추진력을 만난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석유가 단순한 에너지원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산업 원자재와 금융자본으로써 세계경제를 그물처럼 묶어 놓고 있어, 한쪽을 당기면 전체가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산유국을 포함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석유 값이 좀 올라줬으면 하고 기대하는 눈치다. 산업 선진국들마저도 에너지 수입 비용 절약에 의한 혜택보다 세계경기침체에 의한 수출부진으로 입는 경제적 타격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 앞으로 석유 값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더 떨어진다는 예측과 이제 반등할 것이라는 예측이 분분하다. 예측의 무게 중심은 이제 석유 값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쪽에 있는 것 같다. 석유대량 소비국인 중국의 경기가 호전되고 인도 등 개도국 산업화가 가속하면서 석유 소비가 늘어나는 한편, 미국의 쉐일 석유채굴 회사들이 저유가를 못 견뎌 줄도산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유가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석유 값 결정 요인 두 가지를 눈여겨 볼만하다. 그 요인의 하나는 이란핵문제 해결로 대두된 국제정치의 구도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파리 기후변화협정에 따른 탄소감축 압력이다. 모두 유가 인상에 대한 억제력이다.
석유 공급의 주도권이 사우디로부터 셰일혁명을 일으킨 미국으로 넘어 왔다. 게다가 오일 달러에 목이 마른 이란이 금수조치 해제로 석유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하게 되었다. 사우디의 가격조절 능력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석유시장은 이제 사우디 혼자 춤을 출 수 없는 무대가 되었다.
작년 12월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정은 장기적으로 각국의 화석연료 소비 억제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즉 석유 수요량을 억제하면서 석유 값 인하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석탄 값 하락이 좋은 본보기다. 2008년 톤당 140달러까지 치솟았던 석탄 값은 오바마 정부의 화력발전 규제책과 중국의 대기질 개선정책의 영향으로 수요가 줄어 현재 40달러로 폭락했다. 전문가들은 꼭 같은 메커니즘이 석유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세계 각국은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차와 배터리의 기술 개발과 보급으로 화석연료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유럽은 에너지 효율화로 석유소비를 연간 1.5% 감소시켰다. 저유가 시대에 재생 에너지 개발은 가장 악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성장하고 있다. 그만큼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의 잠재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이것이 석유 값을 널뛰듯 움직이게 하지 못하도록 안정시켜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내인신문 2016년 3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