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바둑두는 컴퓨터 알파고

구상낭 2022. 12. 24. 18:55

똑똑한 기계와 천재의 대결

 

김 수 종

내일신문 2016-02-15 17:52:39

 

 

기계 한 대가 보통 사람 50명에 맞먹는 일을 한다고 하지만, 기계는 절대로 한 사람의 천재가 하는 일을 할 수 없다.”

대량생산 체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20세기 초 미국의 작가 엘버트 허바드라가 한 말이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이 말의 유용성은 코메디 쇼의 패러디 소재일 정도로 반감되었다.

바둑 두는 기계 알파고’(AlphaGo)가 요즘 북한의 광명성 4호에 버금가는 화제 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한 달 후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세돌이 누구인가. 지난 10년간 천하 기계(碁界)를 평정해온 바둑의 최강자다. 천재 중의 천재다. 보통 사람은 그의 머릿속에 펼쳐지는 수를 읽을 수가 없다. 바둑의 착점(着點) 361, 이 바둑판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 170제곱이라고 한다. 상상할 수 없는 경우의 수다.

그렇다면 도전자 알파고는 어떤 존재인가. 데미스 하비스 등 대학 친구 3명이 2011년 인공지능 벤처회사 딥마인드를 창립했고, 이 회사를 2014년 구글에 팔았다. 하비스는 계속 회사 대표로 남아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를 개발했다.

작년 10월 알파고는 유럽 바둑 챔피언 판후이 프로 2단과의 5번 대국에서 모두 이겼다. 한번은 두 집 반으로 이겼고, 네 번은 불계승했다. 알파고와 판후이 대국과정이 과학저널 네이처의 커버스토리로 1 27일 공개되자 세계 바둑계는 물론 일반인들도 깜짝 놀랐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이 게임을 분석한 김명관 9단은 알파고는 사람처럼 바둑을 두었다.”고 말했고, 이 게임 심판 토비 매닝은 알파고의 바둑은 방어적이었다.”고 평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3 9일부터 15일까지 다섯 판 열린다. 3번 이기면 승자가 된다. 한국 바둑계는 이 대결을 놓고 갖가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하려면 두세 돌을 깔아야 한다.”는 전망이 있는가하면, “컴퓨터가 한두 판 이길지 모르나 모든 대국에서 이세돌을 앞서지는 못할 것이라는 신중한 예측도 나왔다. 종합하면 이세돌이 알파고를 결국 이길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세돌 본인도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이건 바둑 고수들이 생각이다.

컴퓨터 고수들은 생각이 다른 것 같다. 구글 전문가들은 확률이 50 50이라고 한다. 개발자 하사비스는 알파고에게 프로바둑기사들의 대국 기보 3,000만건을 입력해주고, 알파고가 이 기보를 보고 바둑을 학습하도록 했다고 한다. 1,000년에 해당하는 시간만큼 알파고는 바둑을 학습했다는 것이다. 알파고는 상대방의 다음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는 능력과 바둑돌이 놓일 때마다 누가 승자가 될지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 10월 이후 알파고는 끊임없이 바둑을 배우며 진보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이 게임에 구글은 상금 100만 달러를 걸었다. 그러나 이 대국을 보는 사람들의 관심은 상금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세돌도 조연일 뿐이다. 이 대결의 주인공은 바둑 두는 기계 알파고이다. 그가 이기든 지든 뉴스의 초점은 알파고에 맞춰질 것이다. 이번 게임에 지더라도 알파고는 결국 이세돌을 이길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전을 수락하면서 이세돌이 던진 지금 단계에서 인간이 지면 너무 슬픈 일이라는 한 마디 속에 알파고를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신화의 힘이란 책이 있다. 1988년 미국의 신화학자 조셉 캠벌과 방송인 빌 모이어스의 TV대담 내용을 편집한 것으로 명저(名著)로 꼽힌다. 이 책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빌 모이어스: “기계는 우리를 도와 세상을 우리의 이미지에 따라 빚는다는 우리의 오랜 이상을 실현시켜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계에 대해서 마땅히 기계가 맡아야 할 역할만을 요구합니다.”

조셉 캠벌: "그렇지만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시대가 옵니다. 나는 얼마 전에 놀라운 기계를 하나 샀어요. 컴퓨터 말입니다. 이것을 신을 섬기듯 섬기고 있습니다. 이 기계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금제(禁制)만 잔뜩 요구하고 자비로운 구석은 도무지 없는 구약성서의 신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30년 전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오늘날 인공지능(AI)이란 이름 아래 전개되는 기술발전을 보고 있노라면 두 가지 상반된 상념이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충돌한다. 기가 막히게 편하고 멋진 미래가 펼쳐지겠구나 하는 생각의 파도가 밀려온다. 그러나 그 너머로 또 하나의 거대한 파도를 보게 된다. 기계가 인간세계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엎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파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