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파리 테러, 그 다음 이야기

구상낭 2022. 12. 24. 18:39

내일신문 2015-11-16 12:21:27

 

프랑스 파리가 피로 얼룩졌다. 테러리스트들이 콘서트홀 등 여섯 곳을 동시 다발적으로 공격하여 129명의 시민을 희생시킨 지난 13일 금요일 밤의 파리 테러는 2001년 미국 911테러를 연상케 할 정도로 전 세계를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IS(이슬람국가)의 테러로 단정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추상적인 존재로만 여겨져 왔던 ‘IS’가 구체적인 위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계기가 될 것 같다.

파리는 안전한가?” 지금 이 물음이 급해졌다. 아수라장이 된 파리를 바라보며 백악관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대통령궁과 외교부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 보름 후인 이달 30일부터 12 11일까지 파리에서는 세계 주요 국가 정상이 참석하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1)가 예정되어 있다. 196개 당사국의 정부대표 및 NGO 그리고 언론인 2,000명 등 총 4만 명이 참가하는 매머드 국제회의다. 테러가 일어나기 전 참석이 확인된 국가 정상은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 시진핑 중국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총리, 엥겔라 마르켈 독일총리, 데이비드 카메런 영국총리 등 127명이다.

피의 흔적이 채 지워지지 않은 파리에서 이런 국제회의가 열릴 수 있을까. 그러나 프랑스는 단호하다. 테러 후 회의가 취소될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로랭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를 다섯 번 연달아 외치며 보안을 훨씬 강화하고 예정대로 개최한다고 말했다. 참석하겠다던 각국 정상이 다 모일지는 모르지만 선진국 대통령과 총리들은 프랑스를 응원하기 위해서라도 참석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파리 기후변화당사국총회는 세기적 의미를 가진 회의가 될 것이다. 테러의 공포 때문이 아니라 기후변화의 위기가 이미 지구를 감싸고 있는 상황이어서 합의를 이끌어낼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임기 내 마지막 의제(議題)로서 온실가스 감축의 합의점을 이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해 왔고, 프랑스는 당사국총회 의장국으로서 올랑드 대통령이 앞장서서 정상외교 등을 통해 중국과 인도 등 개도국이자 거대 온실가스 배출국들을 설득해 왔다.

교토의정서가 2007년 채택됐지만 미국과 중국의 충돌로 파행을 계속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파리 당사국총회를 앞두고 모든 국가들이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액을 유엔에 제시했다. 이번 총회는 2009년 코펜하겐 당사국 총회의 실패를 거울삼아 회의 일정을 전략적으로 수정했다. 30일 회의 개막과 함께 먼저 정상회의를 열어 합의를 이루고 실무적인 후속 논의를 하도록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따라서 2021년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국제협정이 체결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테러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당사국총회가 열린다는 것은 이제 기후변화가 국제 문제의 최우선 이슈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전쟁과 테러 같은 안보상의 긴급한 이슈나 단기적인 금융위기가 잠시 세계인의 최우선 관심대상을 차지할 수는 있지만 기후변화 문제가 지구촌의 모든 일상 분야를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미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은 기후변화가 자연재해와 식량문제를 일으키며 국제안보의 위험요소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번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면 세계는 저탄소사회로 가기 위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화석연료를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되면서 산업 구조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자원이 많고 기술력이 좋은 선진국들은 이에 대비해왔다. 중국과 인도는 사실상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유예처분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다. 2030년 온실가스배출 전망치를 기준으로 37% 줄이겠다고 공표했다. 쉽게 설명하면, 규제를 하지 않으면 한국의 2030년 온실가스 배출은 100이 되는데 이것을 63이 되도록 2030년까지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앞으로 15년 동안 에너지 공급과 소비의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국은 이런 변화에 별로 준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만 문제가 아니다. 이미 진행되기 시작한 기후변화의 재난에 대응하는 일도 시급해졌다. 지금 우리나라 모든 다목점 댐의 저수량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린 지난 여름의 가뭄은 재난의 서곡처럼 보인다.

얼굴 없는 테러가 대응하기 어렵듯이 기후변화도 내년 그리고 내후년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공격해올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