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그룹

장관의 딸

구상낭 2022. 11. 8. 12:29

 

자유칼럼 2010-09-15 10:52:18

 

아는 전직 외교관이 있습니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아들이 외무고시에 몇 번이나 낙방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 아파했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 국내 적응을 제대로 못한 아들이 아버지의 직업적 노하우라도 물려받기를 바랐지만 그리 되지 못했습니다.

 

부모들은 누구나 자녀들이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자신보다는 더 출세하기를 바라거나, 최소한 자신이 쌓아놓은 정도의 위치에라도 올라와주기를 바랍니다. 특히 사회적 권위를 가진 직업군, 예를 들면 변호사 의사 외교관 교수들은 그들 자녀의 장래 직업이 부모의 대를 잇기를 바라는 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변호사의 자녀가 변호사가 되고, 의사의 자녀가 의사가 되고, 외교관의 자녀가 외교관이 되고, 고위 공직자의 자녀가 5급 공무원이 되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대우 받지 못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빠 엄마 같이 되지는 말아라.”는 부정적 메시지를 받으며 자라지만, 명예와 부와 권위를 가진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의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부모의 직업세계를 보게 되고 은연중에 직업의 대를 잇도록 교육을 받게 되어 유리합니다. 우리의 교육 관행이나 사회 환경을 보면 ‘개천에서 용 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요. 변호사 자녀가 사법시험에서 떨어지고, 의사 자녀가 의대 입시에 실패하고, 외교관 자녀가 외무고시에 실패합니다. 행정고시에 실패하는 고위 공직자의 자녀는 얼마나 많습니까. 대부분 공개경쟁 시험을 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경쟁률이 높고, 훨씬 수적으로 더 많은 다른 직업군의 자녀들이 치열하게 공부하고 경쟁의 대열에 올라서기 때문입니다. 말은 많지만 공개시험의 공정성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의 외교관 특채 스캔들에 휘말려 사퇴하기에 이른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각하면 개인적으로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장관 본인은 고위 공직자로서의 품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불명예 퇴진하게 되었고, 그 딸 또한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고 살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장관의 명예와 권한을 누리는 것도 모자라 딸까지 외교관을 만들려고 권세를 이용한 것이니 불공정하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또 권세의 한복판에 있는 아버지로서 또는 그 가족으로서 직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지금 우리 사회를 둘러싼 공직 사회의 분위기나 정치적 환경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불의(不義)의 제물이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지 불의를 저지르기 싫어서가 아니다.” 인사의 불공정함도 불의가 아닐 수 없으니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채용 스캔들을 보면서 이 구절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론의 과녁 안에 딱 들어와서 그렇지, 우리 공직 사회의 구석구석에 알게 모르게 불공정하게 채용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내 영향력 아래서 일어나는 일, 또는 내가 내리는 결정이 불의가 될지 아닌지를 되돌아보는 것이 고위 공직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