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그 많던 물은 다 어디로 갔나

구상낭 2022. 12. 24. 18:36

내일신문 2015-11-02 11:36:16 게재

 

 

서울 사람들은 물을 모른다. 부엌이건 화장실이건 수도꼭지를 틀면 물은 항상 나온다. 수돗물을 마셔본 지가 오래 된 사람도 많다. 먹는 샘물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비가 자주 오면 싫다. 우산 준비하고 옷 젖고 불편할 뿐이다. 마당이나 화분에 가꾸는 식물은 수돗물을 뿌려주면 된다. 한 달에 한번 나오는 수도요금 고지서는 서울의 웬만한 소비자들에겐 신경 쓸 거리가 되지 않는다. 커피 두어 잔 값이다.

같은 나라인데 서울서 약 100㎞ 떨어진 충남 서부 지역은 지금 42년만의 대가뭄을 겪고 있다. 생활용수, 농업용수, 공업용수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충청 서남부 지역에 연간 1억 8백만 톤의 용수를 공급하는 보령댐이 말라 저수율이 20%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보령, 서산 등 8개 시·군은 지난달 초부터 강제 제한급수에 들어갔다. 수도권에도 전기를 공급하는 충남 지역 5개의 석탄 화력발전소는 공업용수 공급에 차질을 빚어 가동이 제한될 판이다.

충남 서부지역 뿐 아니라 전북, 경북, 충북 등 중부 지역 전체가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대청댐의 저수율은 36%, 경북 문경의 경천댐 저수율은 겨우 13%다.

서울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별천지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서울 사람들은 물을 원하는 대로 쓰고 있지만 올해 하늘은 서울에 특별히 많은 비를 주지 않았다. 9월까지 내린 전국 평균 강수량은 717mm로 평년(1,220mm)의 59% 수준이다. 서울은 전국 평균보다 적은 577mm가 내렸다. 40년 평균의 42% 수준이다.

충남 서부지방은 42년만의 가뭄

서울 시민이 물을 풍족하게 쓰는 이유는 한강 상류의 대규모 다목적댐들에 가둬놓은 물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강의 다목적댐들도 수위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충주댐의 저수율은 41%, 소양댐의 저수율은 43%다. 이렇게 한강 수계 댐들의 저수율이 낮아진 것은 강원도의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올 연말까지 수도권의 물 공급에 큰 염려가 없다는 게 수자원공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다목적댐의 종합관리시스템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강수 패턴은 봄과 초여름에 가뭄이 심해도 여름에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한두 차례 불면 다목적 댐이 만수위가 되고, 이 물이 이듬해 봄 우기까지 쓰이게 된다. 올해 이같은 강수 패턴이 허물어졌다.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태평양 수온이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과학이 발전했지만 하늘의 일은 알 수가 없다. 엘니뇨도 과학자들이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다. 과학자들이 태평양 수온을 측정하여 엘니뇨가 해양과 대기에 의해 발생하는 순환현상이라는 것을 추적해낸 것은 1957년이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태평양 서안 즉 아시아 지역에는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지만 태평양 동쪽 해안 즉 캘리포니아와 페루 칠레 등에는 폭우가 쏟아진다. 엘니뇨 기간 동안 한국엔 태풍이 잦았다. 그러나 올해 대가뭄은 일어났지만 태풍은 거의 없었다.

따뜻한 해양 표면과 그 밑에 있는 저층수의 수온차가 엘니뇨의 원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엘니뇨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두 현상이 만나면 엘니뇨 현상이 증폭된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요즘은 생태기후학이란 분야 연구가 이뤄져서 아마존 열대우림 벌채가 전 세계 가뭄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까지 생겨나고 있다. 일종의 나비효과라고 할 수 있다.

댐들이 가뭄 대비할 수 있게 활용된다면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올해 우리나라 가뭄을 기후변화와 연계하여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가 전에 없는 가뭄으로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에 말이 많았다. 가뭄에 직면하고 볼 때 4대강 사업은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이다. 22조원이란 천문학적 돈을 투입하고 만든 그 많은 댐(湺)들이 주변 지역을 제외하고는 가뭄해소에 별로 유용하게 쓰이지 못하는 것 같다. 디테일에 허점을 드러낸 정책의 산물이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이 댐들이 가뭄에 대비할 수 있게 활용된다면 유용한 인프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정부는 물 정책에 대해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서울 시민들이 물을 느끼지 않고 살게 할 것인지, 물의 귀중함을 느끼며 살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