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차, 휘발유차 그리고 전기차
내일신문 2015-10-15 11:38:24 게재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태와 관련하여 지난 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폭스바겐코리아의 토마스 쿨 사장과 아우디코리아의 요하네스 타머 사장이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모습이 TV를 통해 방영됐다. 이들 곁에는 벤츠코리아 사장과 BMW 코리아 사장도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전에 없던 이런 진풍경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독일차의 위력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올해 8월까지 외국산 자동차의 국내 판매 점유율은 16.19%이고,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위 4개 메이커가 모두 독일 회사다. 독일차의 시장점유율 상승 행진이 계속될 수 있을까.
이번 폭스바겐 사태로 디젤 엔진 기술의 결정판으로 정평이 난 독일차의 수난 시대는 불가피해진 것 같다. "디젤엔진을 종교"처럼 신봉하는 폭스바겐은 생존을 걱정해야 되는 위기에 봉착했다. 1100만대의 리콜사태가 몰고 올 경제적 기술적 파장, 수입국 정부의 벌금부과 및 소송사태가 초래할 법률적 파장, 그리고 신뢰추락으로 인한 연관 산업의 연쇄파장을 생각한다면 폭스바겐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벤츠나 BMW 등에서 생산하는 독일 디젤차들도 폭스바겐 사태의 영향을 온전히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동차산업은 제조업의 꽃이다. 기술의 축적, 고용효과, 부품산업 등 연관효과가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인지 폭스바겐 사태가 독일차를 죽이려는 미국의 음모가 아니냐는 말이 퍼지기도 했다.
음모론의 발단은 물론 배기가스와 관련한 환경규제다. 미국과 유럽은 환경규제의 우선순위에서 다르다. 미국은 시민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공기오염 규제에 중점을 두지만, 유럽은 기후변화를 촉발하는 이산화탄소 감축에 더 신경을 쓴다.
유럽은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디젤엔진 개발에 주력해 디젤차 보급률이 50%를 넘지만, 미국은 휘발유차 위주로 개발해서 디젤차 보급률이 5%도 안 된다.
폭스바겐사태로 독일자동차 수난시대
휘발유 엔진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으나 질소산화물(NOx)과 미세먼지 배출은 적다. 미국이 독일의 자동차를 죽이기 위해 폭스바겐 리콜사태를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게 미국 음모론의 요지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폭스바겐이 배출가스규제 소프트웨어를 일부러 조작했다고 스스로 자인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질소산화물 등 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독일차를 견제했다는 음모론도 타당성이 약하다. 독일차들이 기술력으로 돌파하지 못하면 휘발유차를 잘 만들어 수출하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럽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폭스바겐 사태는 전혀 비과학적인 기후변화 가설을 내세워 유럽의 자동차산업, 정부, 환경단체가 한 통속이 되어 디젤차 보급 확산을 노리다가 제 발등을 찍은 경우라는 주장이다.
국내 유력 경제지 간부가 이런 주장을 한다. 심지어 그는 유럽 자동차 메이커들이 과학자들에게 돈을 대주며 근거 없는 기후변화를 주장하게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은 미국 공화당 우파 상원의원들도 동조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생각이다. 기후변화는 이미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인간 활동에 의해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는 지구온난화 가설은 지난 20여 년 동안 주류 과학자들에 의해 확립된 견고한 과학적 합의다.
환경규제는 음모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공기오염물질은 개개인의 건강을 해치고, 이산화탄소는 인류문명의 존재에 위협적이다. 디젤 엔진이든 휘발유 엔진이든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이고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 배출도 줄여야 한다.
닛산 테슬러 등 전기자동차 양산시대
폭스바겐은 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조작함으로써 소비자도 속이고 규제당국도 속인 것이다.
폭스바겐 사태는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폭스바겐 사태와 관련하여 일런 머스크 테슬라 자동차 창업자는 "디젤도 휘발유도 한계에 왔다. 전기로 가야 할 때가 왔다"고 역설했다.
테슬라는 물론 애플과 구글 등이 이미 전기차 사업 연구투자에 돌입했고, 닛산을 비롯해 기존 자동차 회사도 전기차 양산 체제에 이미 들어갔다. 중국도 전기차 생산과 보급에서만큼은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12월 파리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탄소감축 협정에 합의가 이뤄진다면 전기차 시대는 새로운 속도를 갖게 될 것이다. 한국의 준비상황이 궁금하다.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통찰력이 반영된 시스템 구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