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다시 생각해보자
내일신문 2015-07-22 22:58:47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경주 방폐장(방사능폐기물처리장)이 완공되었다. 지금까지 원전 주변에 임시 저장되었거나 앞으로 나올 중·저준위 핵폐기물이 나름 안전하게 격리될 지하 영구 보관소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생각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핵폐기물 처리 문제 전체를 놓고 보면 경주 방폐장 완공은 문제 해결의 초보 단계에 불과하다.
고준위 폐기물, 즉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리시설은 손도 못 댔다. 1978년 고리 1호기가 가동된 이후 나온 사용후핵연료는 모두 1만8600여 톤에 이르며 모두 원자력발전소 내에 만든 임시저장소에 보관 중이다. 게다가 매년 750톤이 추가로 쌓여가고 있다. 고리 및 월성 원전의 임시저장시설은 2~3년 안에 모두 차게 된다고 한다. 당국은 원전 내 저장시설 확대를 통해 당분간 문제를 해결할 요량이나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축적이다.
정부가 구상한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가 지난 6월 11일 권고안을 내놓았다. 2020년까지 부지를 선정하고 2030년에 실증 및 검증작업을 거쳐 2051년에 건설해야 한다는 로드맵이다.
고준위폐기물을 수만 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부지선정과 기술개발은 도전적인 과제다. 미국 등의 경험에 비춰보면 적정한 부지를 선정하기 위해 10년, 20년에 걸친 지질조사와 암석 실험 등을 해야 한다. 한국의 100배 넓이에 다양한 지질구조를 갖고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땅은 대부분 화강암층이어서 고난도의 기술 확보가 요구된다. 또한 경주 방폐장 건설 과정에서 드러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회적 갈등이 기다리고 있다. 5년 안에 적정한 부지를 선정할 수 있다고 정책당국자는 생각하고 있을까.
원자로 폐로(廢爐)는 또 다른 도전이다. 국가에너지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한수원은 지난 6월18일 고리원전 1호기 폐로를 결정했다. 정부와 전력당국은 연장 가동을 내심 바라고 있었지만 고리 1호기에 대한 국민여론이 워낙 나빴기 때문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폐로기술 선진국의 70%수준
원자력발전소는 가동 중엔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전력원이지만 멈춰서는 순간 거대한 방사능폐기물 덩어리다. 원자로 자체는 고준위 폐기물이고 발전소 안의 물품과 시설물이 중·저준위 폐기물이 된다.
원자로가 철거된 땅은 어디에다 쓸 것인가. 여기에 농작물을 기를 수 있을까, 또는 아파트, 공장, 사무실빌딩을 지으면 입주자들이 올 것인가. 일반 시민의 눈에는 그야말로 '작은 후쿠시마'로 비칠 뿐이다.
정부가 제시한 고리 1호기 폐로 로드맵을 보면, 한수원이 2017년 가동을 중단하고 1년 안에 해체 계획서를 제출하면, 원자력 위원회가 주민 의견 등 제반 절차를 거쳐 2022년 해체계획을 승인한다. 이렇게 5년의 준비과정을 거친 후 6년 동안 방사능오염물질을 제거와 시설해체를 거치고 다시 2년에 걸쳐 원전부지 복원작업을 마무리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민 동의 등 여건이 순조로워도 15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정부는 언론에 이런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폐로산업 육성이라는 희망을 던졌다. 앞으로 전 세계 수백 개의 원자로가 설계수명을 다하면 블루오션이 형성될 판인데 고리1호기 폐로과정에서 획득한 기술을 갖고 폐로산업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폐로 작업에 4천명의 고용효과가 생긴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폐로에 의한 부수적 이익이 본령이 될 수는 없다. 이 거대한 방사능 덩어리를 어떻게 안전하게 처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의 폐로 기술은 이미 폐로기술을 확보한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의 70% 수준이라고 정부가 자인하고 있다. 30%의 격차는 단순한 산술적 수치가 아닐 것이다.
고리1호기 폐로 과정 15년은 너무 귀중한 공부시간이다. 원자력 산업의 전(全) 주기에 걸친 안전문제를 공부할 기회이기도 하지만 국가 에너지 수급체계에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와야 하는 기간이다. 우리 앞에는 온실가스감축이라는 피할 수 없는 도전이 임박해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화력과 원자력의 쌍두마차였다. 2030년까지 37%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이 도전을 이제 원자력 발전으로 뚫으려는 모양이다. 2029년까지 원전 13기를 새로 짓는 계획이 있다.
신재생 에너지 개발 중심으로
그러나 미래를 생각하는 국민들의 눈에는 기후변화를 촉진하는 화석연료도 문제지만 방사능폐기물을 계속 배출하고 사고가 나면 파국적 결과를 초래하는 원자력도 불안하기만 하다.
이제 원자력발전소는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고 신재생 에너지 개발로 에너지 정책을 과감하게 전환해 나갈 시점에 섰다. 방향을 바꾸는 일은 어렵지만 일단 바꾸면 그 길에 적응하게 된다.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 없는 나라를 만들기로 작정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 생산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안전성 확보를 전제조건으로 기존 원자로의 설계수명을 연장하는 사회적 합의도 깊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