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 사장의 중국 이야기
자유칼럼 2010-08-11 10:31:53
7월 말부터 8월 초에 걸쳐 실크로드로 더 잘 알려진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를 여행했습니다. 이곳을 여행하면서 실감한 한 가지 사실은 서역을 찾는 한국인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겁니다.
위구르자치구는 면적이 무려 166만㎢로 남한의 17배나 됩니다. 이 거대한 땅덩이 한가운데에 천산산맥(天山山脈)이 동서로 2천500㎞나 뻗어 있습니다. 그 산맥 중간쯤에 이름도 낯선 우르무치라는 도시가 있는데, 시내 한복판에 ‘대장금’ 간판을 단 한국 식당이 있었습니다. 이 식당엔 한국인 여행객들이 꽤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우르무치에서 비행기를 타고 파미르 고원을 향해 서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날아가면 카슈가르라는 위구르인 오아시스 도시가 있습니다. 실크로드의 요충지입니다. 이곳에 중국 청나라 건륭제의 비로 책봉되었던 위구르 여인 향비(香妃) 일가 무덤이 관광지로 개방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배낭을 멘 젊은 한국인 여성을 만났습니다. 나는 조선족 가이드인가 생각했더니 방학 동안 실크로드를 혼자 여행하는 국어 교사였습니다. 이곳 가게 종업원이 물건을 흔들어 보이며 “이거 10위안이에요.”라고 외치는 걸 보니 한국인이 꽤 찾아오는 모양입니다.
좁은 국토에서 살아온 탓인지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한국인들은 세계 곳곳을 두루 누비며 여행하고 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보면 그게 더욱 확연합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이후 한국인의 해외여행은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여행사의 숫자가 1만1천500개에 이른다는 사실만도 놀랍습니다.
내가 참여한 여행은 희망제작소 실크로드 탐방 프로그램인데, 우리 일행 중에는 ‘하나투어’의 권희석 사장도 있었습니다. 권 사장은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에 유행했던 벤처붐을 여행업계에 적용하여 성공시킨 인물입니다. 청년 시절 의류제조 대기업의 사원으로 출발했지만 좀 더 도전적인 일을 해보고 싶어서 광고대행사로 옮겼습니다. 1990년 하와이에서 열리는 광고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일본 고등학생들이 그곳에 수학여행 온 것을 보고 “10년 안에 우리나라도 저렇게 여행을 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고, 1995년 12월 기회가 닿자마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와 함께 동업으로 ‘하나투어’를 창업했습니다.
대형 호텔과 항공사의 계열기업으로 탄생한 여행사들이 판치던 당시 신생회사 하나투어는 어려운 경쟁의 파고를 넘어야 했고, 1997년 찾아온 IMF 금융위기는 회사를 풍전등화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1999년 하나투어는 업계 랭킹 1위로 치고 나섰습니다. 무엇이 하나투어의 도약을 견인했을까요?
물론 해외여행 붐이 계속 확장되었기 때문에 좋은 시장이 형성된 것이 제일 큰 원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건 국내 여행사 모두에게 주어진 공통된 여건이었습니다. 하나투어의 경영철학, 즉 사원이 회사의 주인이 되는 사원지주제를 채택한 것이 결정적 계기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사원이 창의적으로 일하고 회사가 투명해지면서 구멍가게식 여행사가 아니라 첨단 기업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2000년 하나투어는 여행사로선 처음으로 코스닥에, 그리고 2006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했습니다.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 목표를 명확히 한 것이 읽혀집니다.
해외여행 하면 떠오르는 것이 ‘새로운 경험’ ‘심신의 충전’ ‘중산층’ ‘골프’ ‘쇼핑’ ‘향락’ 등등 여행자 개인적인 일로서 생각을 하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이런 개개인의 여행 수요를 모으면 사회 경제적으로는 중요한 관광산업이라는 것이 형성됩니다. 그 과정에서 돈이 유통되고 일자리가 생깁니다. 영세 여행사의 난립으로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기는 하지만 관광업 하나로 수만 명의 일자리가 생기고, 음식 숙박 쇼핑 등 경제적 파급효과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투어는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직원이 1,500명이나 되는 대기업이 되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는 현지 법인을 만들어 각각 12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권희석 사장도 실크로드 여행이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권 사장은 방대한 중국의 관광시장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눈을 중국 구경을 가는 한국 관광객에서 해외여행을 나가는 중국인 관광객과 중국 구경을 하는 세계 각국 관광객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현재 해외여행을 가는 중국인은 약 5천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이 홍콩과 마카오로 나가고 실질적인 해외여행객은 2천만 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2020년이 되면 중국의 해외여행객이 1억 3천만 명으로 늘어나리라는 게 국제관광업계의 추산입니다. 그래서 하나투어는 중국법인을 만들고 중국인의 해외여행 대행업 허가를 신청해놓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인구에 해당하는 중국 관광객이 해외로 쏟아져 나가는 것은 관광 업계로선 블루오션이 접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이웃한 한국도 준비를 잘하면 관광산업이 융성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권 사장은 현재도 중국 관광객의 씀씀이가 일본 관광객의 2, 3배 된다고 말합니다. 중국 관광객 중에는 최근 국내 호텔에서 1억 원짜리 시계를 덜컥 매입한 사람도 있고, 2천만 원짜리 가죽코트를 한꺼번에 5벌이나 산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권 사장은 중국인 해외여행 붐을 염두에 둘 때 한국은 중국인에게 그렇게 매력적인 곳이 못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호텔 식당 등 기본 시설도 외국인 관광객 1천만을 생각하면 턱없이 모자란다고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어 잘하는 가이드를 양성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닌데, 인적 자원도 크게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의식도 문제라고 합니다. 외국인을 대하는 데서 미국인 등 영어사용권 사람들에게는 친절하지만 비영어권 관광객에는 불친절하다는 겁니다. 일본인이나 태국 사람들은 어떤 나라 관광객에게도 미소를 지으며 호감을 보이지만 한국인들은 미소 짓는 데 대단히 인색하다고 합니다.
중국인에게 한국의 역사유물이나 자연절경은 그리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합니다. 대안은 문화 컨텐츠라는 게 권 사장의 견해입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나 한류에 관심이 많으니 이쪽으로 집중 개발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하나투어가 주선해서 이병헌 팬 사인회 관광 프로그램을 마련했더니 일본인 관광객 1,400명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것도 일반요금보다 50%나 더 비싸게 책정했는데도 말입니다.
중국의 도약, 권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관광산업에서도 중국이 일으킬 일대 변화가 예상됩니다. 여행사 경영자에게는 돈벌이의 문제이고, 나라 입장에서는 중요한 경제 문제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