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이재웅의 무시무시한 이야기

구상낭 2022. 12. 22. 12:24

 

내일신문 2015-02-23 17:01:05

 

전화와 문자, 일정관리 그리고 간단한 정보를 검색하는 것 이외에 스마트폰을 다양하게 쓰는 것에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나는 그런 아날로그 세대의 일원이다. 하물며 은행 일을 폰뱅킹으로 하는 것은 그 동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스마트폰 문자판에서 글자 하나 잘못 건드리면 뭔가 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친지의 혼사나 상가에 못 가게 되면 아는 인편을 통해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보냈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우체국에 가서 경조환을 부쳤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으로 초보적인 은행 업무를 많이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적이 놀라게 됐다. 웬만한 송금은 폰뱅킹을 아무 생각 없이 이용한다. 시간이 절약되고 수수료가 없거나 덜 들고 받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의 계좌에 원하는 메모를 남길 수도 있다. 전자기계가 갖다 주는 편익에 젖어든 것이다.

사람의 손을 전혀 거치지 않거나 최소한에 그치는 금융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가면 금융 거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똑똑한 전자 기계가 담당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20년 전 "인터넷 시대가 발전하면 은행이 사라질 것"이라고 진단한 미국 유명 컨설팅회사의 예언이 떠오른다. 금융계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똑똑한 기계가 그 일자리를 점차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무리일까.

금융권은 대학생들에게 안정적이고 월급을 많이 받는 좋은 일자리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니 금융권에서 일하고 싶은 대학생들에게 기계가 사람을 대신해가는 작금의 추세는 어두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재웅 씨는 다음 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해서 IT돌풍을 일으켰던 벤처 1세대다. 그는 요즘 'SOPOONG'이라는 벤처 인큐베이팅 사업을 하고 있다. 이재웅 대표가 이달 초 제주도에서 열린 HRA(대학생들의 '인성과 직업적응능력'을 함양시켜주기 위해 시니어 세대가 만든 1년 코스의 아카데미) 겨울캠프에서 '무시무시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특강을 했다.

중개인의 위기, 인공지능과 로봇의 융합

이재웅 대표의 특강 요지는 기성세대가 아무리 미래를 밝게 그리려고 해도 청년 일자리 문제는 대단히 암울하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그림을 믿지 말라는 얘기. 그는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4가지 딜레마로 풀어 보였다.

첫째, 중개인(middleman)의 위기다. 기술, 교통, 통신, 인터넷, 금융의 발전으로 중개 플랫폼이 사람을 대치하고 있다. 즉 금융인, 부동산중개사, 오퍼수입상, 도매업자, 출판사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예를 들면 은행이 보급하는 폰뱅킹이 결국 은행원을 대신해가고 있는 셈이다.

둘째,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융합하면서 초래할 딜레마다. 로봇은 위험하고 단순 반복적인 일을 잘 수행함으로써 생산직 숙련 노동자를 대치해가고 있다. 인공지능은 전문직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다. 번역도 인공지능이 수행한다. 무인자동차와 무인비행기가 나오고 있지 않는가. 미국에선 기자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스포츠 기사를 쓰고 있다. 인공지능이 장차 직업 세계에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셋째, 혁신의 딜레마다. 혁신이 뭔가. 단위 생산 당 비용을 줄이든가 혹은 새로운 비금전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기존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다. 비용 절감은 결국 값비싼 노동력을 줄이는 방향이 될 것이다. 그러니 혁신을 계속할수록 사회는 잉여 노동력이 늘어나게 된다.

넷째, 교육과 직업의 딜레마가 심각해지고 있다. 교육기간은 길어지고 일하는 기간은 짧아진다. 그럼에도 숙련, 교육, 전문성의 효용은 감소하고 있고, 모든 직업군에서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있다. 지금 안정적이라고 보는 대기업, 공무원, 언론 등의 직업군이 현재의 위상을 지킬 수 있을까.

기술발전이 일자리를 위협하는 시대

이재웅 대표는 생각보다 기술발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것이 일자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고 본다.

그는 우스개로 새로 나온 스마트폰 기능을 잘 몰라 헤매다가 아내로부터 핀잔을 받기 일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다음'을 창업하기 전 프랑스에서 인공지능을 공부했다. 이 대표는 개발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인공지능은 아주 유망 분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용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소수의 혁신가들에 의해 독점되는 '로또경제화'화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은 결국 소수에 의해 독점되는 잉여 부(富)와 대량의 잉여 노동력으로 귀결되는 양극화 사회다. 이 상태는 결코 지속가능할 수 없다.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청년실업의 실태를 보면서 '이재웅의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하구나 하는 생각을 못 지우겠다.